"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하는 것,
작지만 끝까지 꾸준히 밀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아는 가장 위대한 삶의 길이다.”
박노해 <다른 길 > 중에서
오늘 어느 분의 PT 마지막 장에 씌여진
박노해 시인의 글을 읽고 나니 마음 한 구석이 쿵 하고 내려 앉은 기분.
밀려 있는 나의 작고 작은 이 업무들을
사랑으로 다 해치우리라 결심하고 자리에 앉았다.
특별히 야근을 허락 받은 소중한 날이므로-
국밥을 회사 동료와 순식간에 후르륵 쩝쩝 먹고 올라와
동생에게 주자매 안부를 살짝 물은 후
눈을 꿈뻑꿈뻑거리며 나만 기다리고 있는 업무 친구들을 불러 내어
목적과 기대효과와 비용과 평가결과와 근거 자료들을 아낌없이 늘어 놓고
마치 햇볕에 바짝 말린 빨래를 개는 것처럼 착착- 해치운다.
노트에 완료된 것들은 형광펜으로 밑줄 쫙-
이 작은 성취감이 좋아서, 아직도 to do list는 작은 노트에 볼펜으로 쓰고 있다.
얼마 전 동생이 사준 필통에서 꺼낸 스태들러 색연필로 특별히 밑줄도 한번 쳐준다. 쓰윽-
완료/미완료/체크 및 협의할 것 /정산/ 등등
노동요로는 우리 남편이 좋아하는 요조의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와
쇼스타코비치의 왈츠와 쳇 베이커와 스테이시 켄트.
단 한 번도 잘나간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를 닦다가 아. 그때였나?
책을 읽다가 혹시 그때?
지하철 승강장에서 차를 놓쳐 발을 동동 거리다가. 어쩌면 지금인건가?
만약, 지난 거라면
어쩜 그게 지금이라면 조금 슬프지만 받아들여야지
나는 위대한 일을 하는 것 같진 않지만(어쩌면 할 수 없을지도?)
적어도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들을 끝까지 꾸준히 밀어나가는 것은 잘 할 수 있으므로.
좁고 사람들 눈에는 띄지 않는 한적한 오솔길이지만
열심히 돌도 줍고, 풀도 뽑고, 가끔 앉아서 하늘도 보면서
내 길을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