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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말하고 후회하고

by 와락 2015.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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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말을 안 해서 후회되는 일보다도 

말을 해 버렸기 때문에 후회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 법정 스님- 





아침 9시 조금 넘어 도착해서 신나게 아메리카노 한 잔을 앞에 두고 홍홍 거리다

출근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업체의 계약서 재촉 전화를 받고 동료와 점심을 먹고 재잘재잘 아줌마 수다를 떨고 

화장실에서 만난 누군가가 흰머리를 뽑고 있어 뽑지 말라 한 소리 거들고 

자리에 앉아 샤샥샤샥 계약서를 쓰고 또 백업 자료를 만들고 단가의 적정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떠들어 대고

김밥 한 줄을 사와 먹고 다시 또 자료를 만든다. 


이렇게 12시간이 지났다. 

너무 리얼하게 보여주는 화장실 거울이 살짝 미워질라 한다. 

다리는 퉁퉁 부었는지 무겁고 손목은 뻐근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하루 종일 쏟아 내 버린 말의 무게에 짓눌리는 기분이다. 



'후회'라면 일가견이 있는 내가 아니던가.

남편의 지적대로 머리는 생각하라고 있는 것인데, 

오늘은 필터링 없이 떠오르는 대로 얼마나 많은 말을 했는지-

입안이 텁텁하다. 

이러면서 집에서는 주자매에게 '그런 말'은 하는게 아니라며 타이르고-




친구들을 만나도

마치 '주제'가 공이라도 된 것 마냥, 나의 주제와 테마가 나오면

쉬지 않고 이야길 몰아간다. 친구들의 끄덕임과 맞아. 라는 추임새에 한껏 고무되어

격정적으로 이야기의 절정을 향해  달린다.

주로 누군가의 뒷담화거나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사건들을 말하는 것인데 

외국 배우처럼 현란하게 손을 움직이고 얼굴에 감정을 실으며 열심히 떠들어 대는 건 

그 순간만큼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 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점점 나는 희미해 진다. 

물론 나는 많은 이름이 있다. 

주자매의 엄마와, 의미없는 명함속 이차장, 누군가 들으면 킥킥거리는 앨리스.

하지만 언제나 조연이거나 배경인물, 과장하자면 소모품 같은 삶의 느낌이라서인지

이야기를 할 때 만큼 이라도 주연을 차지하고 싶은 것 같다. 




일부 각색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완전한 나의 입장에서 내가 만든 내 이야기

대상에 대한 이해 혹은 역지사지는 잠시 잊고 

오로지 나만을 위한 이야기

듣는 이가 그저 끄덕여만 줘도 충분한 나의 이야기 






그래도 집에 가는 길에는 후회가 된다. 

매일 반성과 후회 그리고 자책을 하는게 나의 루틴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오늘도 오염된 언어로 얼마나 많은 말을 한 것인가. 




주말에는 묵언수행 좀 할까보다.

주자매들에게 책 읽어주는 시간은 좀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