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요즘 영어에 푹 빠졌다.
집에 오면 본인만 아는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 데
주로 그날 배운 단어를 가지고 어미를 조금씩 바꿔가며 말한다.
놀라운 건 경이가 다 알아 듣는다. 싱기방기.
어제 저녁에는 모두 자려고 누웠는데
엄마 이제 그만 슬리핑 해.
내 귀를 의심하며, 머라고? 다시 묻자
슬리핑 하라고.
경은 그게 아니야 슬리이잎 이라며 어김없이 티칭을 해주고.
경이는 언제나 배움의 열정이 넘치기 때문에
무언가를 배워오고 나에게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 전혀 새롭지 않은데,
늘 슬픔이 처럼 늘어져서 양호실에 가겠다고만 하는
우리 둘째가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신기하다.
가족들도 저 녀석이 뭘 하긴 하는구나 싶어 한 마음으로 안도하고.
어쩌면 두 자매에 대한 기대치가 이렇게 다른지 알다가도 모를 일.
내가 놀라워 하며 대단하다~~ 라고 한껏 치켜세우자
두 자매는 신이 났다.
경은 질문을 하면 자기가 다 영어로 알려주겠다고 호기롭게 이야기 하고
둘째는 아는 단어 위주로 큰 소리로 외친다.
마치 퀴즈 대회에 나온 커플 같다.
사자
라이어언
호랑이
타이거어
오오 대단하다. 우리 딸들이 영어를 잘 하네.
흐뭇해진 경, 더욱 목소리가 커진 둘째
표범!
…… 넌 내가 안 배운걸 물어보면 어떡하니!!!
너는 표범이 영어로 뭔지 알아?
물론이지.
뭔데?
레쉬!
둘째가 너무 당당하게 이야기 하자
그때까지 누워 있던 남편은 어깨를 들썩거리며 키득이다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표범을 검색해 본다.
대체 어떤 발음을 들었기에 저리도 당당한가.
틀려도 즐겁다.
언제나 괜찮다.
모를 때는 내가 아기라서 모르는 거라며 울어버리거나
아직 아기라 배우지 못했다고 쏘 쿨 하다.
그리고 절제된 동작으로 본인의 흥에 겨워 춤을 춘다.
무반주로 추다가 조금 심심하면 허밍으로 멜로디를 만든다.
음이 맞지 않다며 언니가 지적을 하기도 하지만
거울을 보며 심취해 있어서 언니의 지적이 들리지 않는다.
가끔 언니의 잔소리가 듣기 싫으면 두 손으로 귀를 막기도 한다.
옷장 속의 인형들이 더울까봐 모두 꺼내 선풍기 앞에 늘어 놓기도 한다.
유치원에 새로 친구가 왔다고 엄마한테 신나게 이야기를 한다.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못한다.
언니가 한글을 배울 때 어깨 넘어 배운 ‘ㄷ’
대체 ‘ㄷ’의 무엇이 그토록 인상적이었는지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글자는 디귿이다.
반듯반듯 정갈한 ‘ㅁ’ 같은 시경과
‘ㅁ’이 되려다 만, 누군가의 부족함을 메꿔 줄 수도 있을 듯한 ‘ㄷ’ 같은 둘째
아마 오늘도 경은 내가 신발을 벗고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그 찰랑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돌돌 말면서
‘엄마, 내가 오늘도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라고 할 것이고
둘째는 아무렇지 않게 팬티 바람으로 꺅꺅 거리며 나를 반길 것이다.
킥보드를 배우는 둘째
속도는 느리지만 꾸준히 하면 무엇이든 전보다는 잘하게 된다는
진리를 몸소 보여주고 계신.
시력 측정하러 가서 찍은 사진.
내가 뽀로로를 낳은 것인가.
요즘 주력하고 있는 표정 1
혹은 이 표정 2
이 모든 걸 지켜 보는 언니.
이해는 안되지만 내 동생이니까.
아빠가 일본 출장 중 사온 유카타.
가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