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자매는 격렬하게 말로 싸우고 있다.
전에는 일방적으로 둘째가 당하는 쪽이었는데
이제는 곧잘 논리적으로 따지고 든다.
그런 상황을 매우 언짢아 하면서 경은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조목조목 혼을 낸다(어디서 감히?)
말을 못할 것 같으면 그냥 울어 버리던 둘째가
요즘엔 독이 가득 오른 얼굴로 씩씩대다가
벽쪽으로 붙어서 혼자 숨을 고르는데
얼굴에 '이기고 싶다. 진심으로'가 씌여 있다.
그래. 엄마는 니 맘을 알 것 같아.
주자매의 혼이 담긴 말싸움이 끝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머리를 맞대고 그림을 그리는데
본인의 창작열을 가열차게 뿜어내던 둘째는
언니의 그림을 보고 좌절하기 바쁘다.
가족들은 보고 그리는 그림에 더욱 소질을 보이는 경이보다
혼자 쓱쓱 그려대지만 어느덧 오-그럴 듯 한데. 무언가가 완성된
둘째 녀석의 그림을 보고 감탄 했었는데.
정작 본인은 그렇지 않은지.
그 작고 귀여운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통통한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 난 언니 처럼 못해. 할 수 없어'를 반복한다.
우리 아기야. 넌 그렇지 않아. 네 그림은 특별한 걸.
아무리 위로해도 주시성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이기고 싶은' 경쟁자
언니의 그림이 제일 멋진 것 같다.
그럴 때면
우리 경선생님께서는
몸을 더욱 꼿꼿히 세우고는 일장 연설을 하시는데.
언니도 처음부터 잘했던 것은 아니야.
나도 이렇게 되기 까지 힘들었어. 언니는 네살, 다섯살 때부터
열심히 노력해서 여섯 살 때 잘하게 된거야.
너도 노력하면 되는데 하지도 않고 그러니. (내 딸 맞나요?)
둘째는 그 말을 듣고 더욱 더 울부짖지만-
가족들은 그래 언니 말이 하나도 틀린게 없어(고개를 떨구며).
경이는 그 이후로
화를 다스리는(?) 법, 글씨를 쓰는 법, 책을 읽게 된 것,
블록을 쓰러트리지 않게 쌓을 수 있는 법 등등
본인이 6살 인생을 살아오며 얻은 각종 노하우와 깨달음에 대해 말할 때면
'언니도 처음부터 잘했던 것은 아니야'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럴 때 마다 둘째는 일단 도망을 치고
아직도 언니의 레파토리가 안끝났으면 노래를 부르거나
우헤헤 거리며 말도 안되는 장난을 하지만
경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르게 앉아 본인이 해야 할 말을 끝까지 마무리 한다.
서른 다섯 해를 살고 있지만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내 자식에게도
'나도 처음부터 잘했던 것은 아니야'로 이야기 해 본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아빠를 닮았을 것이라 생각되는 경의 근자감이 부럽기도 하고.
다시 돌아온 이 곳에서
물론 많을 것이지만, 제대로 시작도 해보지 않고
그저 이전의 경험에 비추어 두려움과 짜증의 감정을 번갈아 느끼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나에게는
경선생의 말씀이 필요한 것 같다.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잖아. 그럼요.
둘째의 그림들.
아이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그림 속 주인공은 '엄마'
아이가 나를 이렇게 예쁘게 봐주고 있구나.
하루종일 떨어지지 않던 껌딱지.
내 수면의 질을 최악으로 만들던 장본인이 어느덧 커서
나를 예쁘게 그려주기도 하고.
투닥거리면서도 어린이집에서는 끔찍하게 동생을 챙기는 아이.
신경써서 힘들지. 라고 물으면
신경을 쓰는게 아니고 신경이 쓰여.라고 대답함. 아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