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과제발표가 있어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노트북을 켜고 정리를 하다 보니 새벽 2시.
창백해진 얼굴의 친정엄마가 거실에 나오셔서 가슴이 답답하다고 호소.
옷을 주섬주섬 입고 나와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배낭에는 몇 차례의 새벽 응급실행으로 몸소 깨달은 필요 물품(배터리 충전기, 무릎담요)들을 챙겨놓고-
아직 우유배달도 오지 않는 시간.
적막한 주차장의 고요를 깨는 자동차 엔진 소리.
지난 주 B형독감에 걸려 고열과 기침으로 고생한 주자매가 회복세에 접어들자
엄마가 근육통과 목감기로 시름시름 앓으셨는데, 그냥 지나갈 수준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피검사, 심전도 등의 몇 가지 검사를 하고 수액을 맞으며 응급실 침대에 있다가
입원 할 수준은 아니라며 가래약과 진료의뢰서를 받고 퇴원한 시각은 6시
집에 돌아오니 6시 반, 2시간 정도 자고 아이들을 데리고 9시 넘어 회사로 출발.
바나나 하나로 아침을 대신하고
아메리카노를 들이키며 오전 미팅을 시작한다.
지난 주, 시고모상과 아이들 독감으로 연달아 휴가를 내서
예정된 회의를 2번 연속 취소한 터라 또 다시 미룰 순 없다.
점심을 먹고 나니 눈이 계속 감긴다
하루 정도 밤샘에 이렇게 힘들다니. 체력이 엄청 떨어지긴 했나보나 중얼거리며
매출 포캐스팅 자료를 정리하는 사이 남편의 전화.
친정엄마가 동네 내과에 가셨는데, 거기서 또 상태가 안좋아 엠뷸런스 타고 응급실로 가는 중이라며.
침착한 의사 선생님이 최근 통화목록에 뜬 사위의 전화번호를 보고 바로 연락하신 듯.
친절하게도 어머니 밧데리가 없으니, 본인한테 전화하라고 연락처를 알려주기도.
머릿 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지만
신속하게 하던 일을 정리하고, 회사에 반차 휴가를 신청한 후
단톡방 동료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조용히 사무실을 빠져 나간다.
응급실에 도착하니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엄마가 휠체어에서 수액을 맞고 계시고,
엠뷸란스를 타고 같이 와주신 의사선생님은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신 후 드라마의 한 장면 처럼 '그럼 이만' 이라고
짧은 인사만 남기시고 가셨다.
곧 이어 남편 도착. 새벽에 했던 검사 몇 가지를 또 다시 반복하고, 추가로 한 두개를 더 하고-
이번에는 입원을 해야 하나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남편이 학교에 가라고 등을 떠민다. 과제발표이긴 해서 어찌 해야 할지 고민 하던 중인데.
무거운 발걸음으로 학교에 도착하여 무사히 발표를 마쳤다.
다행히도 엄마는 다시 퇴원 조치를 받으시고 집으로.
아이들은 남편이 , 엄마는 여동생이 맡아서.
하루가 길다.
공을 한 4개 정도 가지고 아슬아슬하게 저글링을 하는 것 같다.
뒷목이 뻣뻣해지는 아찔한 순간들이 있지만,
각자의 공으로 저글링을 하던 남편과 동생이 '이번엔 내가'라며 대신 받아줘서 가까스로 넘기고.
한 숨을 돌리고 겨우 공을 잡아 위로 띄우려다 보면 타이밍이 안맞아 한 타임 기다려야 하고.
하지만, 저글링을 할 수 있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한 일 아닌가.
주님의 말씀처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니 오늘은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