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뿌옇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주방 테이블에 앉아 KBS 1FM을 들으며 차를 마시는 혼자만의 시간인데
저 멀리 보이는 하늘이 미세먼지로 가득 차 있어 아쉽다.
안식휴가 20일째
회사 복귀 전 시경이의 하교 후 일상을 규칙적으로 만들고
정보도 공유 받을 수 있는 엄마 친구도 사귀고
평일 낮 아이들과 에버랜드도 가고 도서관도 가고
읽고 싶었던 책도 여유롭게 보고
운동도 시작하려고 했는데
시성이를 판교까지 등하원 시키는 일정이 녹록치 않아 '여유'는 없지만
나름 계획대로 알차게 보내고 있다.
아직 엄마 친구는 사귀기 전인데
녹색어머니회도 신청하고, 반대표 엄마가 보내는 카톡 메시지에도 이모티콘을 붙여가며 열심히 응답하고
이번 주에 있을 모임도 빠지지 않기 위해 미리 남편한테 일정도 공유해 두었다.
처음이라 그런지 '가볍게 참석해 볼까나' 하는 자연스러운 마음이 전혀 아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중요 의사 결정을 앞둔 임원 미팅에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일 학년 때 사귄 엄마 친구들의 우정이 계속 유지된다는 선배들의 이야기도 들었던터라서.
조직에서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수줍음이 없다고 생각할 텐데
아 정말이지 누군가를 사귀어야 한다는 것은 어렵고 어렵다.
교회를 다닌 지 벌써 9년이나 되가고 있지만 여전히 샤이한 성도이기도 하고.
낯선 상황에서 움추려드는 시경이의 태도는 나를 닮았을 것이다.
내년 1월이면 만 12년(근속기간)을 다닌 대가로 30일짜리 안식휴가가 나온다고 한다.
출산휴가 기간을 제외했기 때문에 실제 햇수로는 벌써 13년째이다.
13년이면 시경이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후 대학에 진학할 시간인데
이제 그만 졸업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요즘 들어 부쩍 그런 생각이 든다.
5년 전, 둘째를 낳고 짧은 육아휴직을 쓰면서 밤새 뒤척거렸는데
다시 복귀 하고 나서 얼마나 즐거웠었던지.
2주 후 회사에 가서도 그럴 수 있을까. 오래 전의 나와는 다를 것 같다.
열정이 떨어진 것인가
아니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가치 판단의 기준이 달라진 것인가.
소노 아야코의 '약간의 거리를 둔다'라는 책에서는
회사를 애정하지 말라고, 거리를 두라고 되어 있다.
회사나 조직을 사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사랑은 사랑의 시작과 동시에 눈을 멀게 만든다.
이성을 향한 깊은 애정만 그런 것이 아니다.
회사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과 상관없는 인사 문제에 쓸데없이 관여하고,
그만둔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고, 남아 있는 동료를 귀찮게 만든다.
졸업과 퇴로에 대해서는
복귀 후에 좀 더 생각해 보려고 한다.
나머지 시간은 나와 아이들에게 집중하기로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