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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오늘은 그뤠잇

by 와락 2017. 11. 9.


요즘 다시 콩코르정을 복용 하고 있다. 

이동진 작가님을 닮은 의사 선생님이 가끔 통증이 올 때만 드세요 라고 해서 서랍에 넣어 두고 있었는데

학기가 시작되고 시험이나 과제 등등으로 신경이 쓰였는지 나만 알 수 있는 으레 그 서늘한 통증에 두렵기도 해서 

깊숙히 넣어 두었던 약병을 꺼냈다. 아무렴 내 너를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야. 그래 그 동안 안녕했니. 

반갑지 않은 통증에게 콩코르정을 내려보내 인사를 하고  다독거리는 중이다. 



지난 주말에는 남편의 고모부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투병 생활 끝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왕래가 잦은 편이 아니기도 하고 어머니 돌아가신 이후로는 더 소원해져서

몸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생사를 오가는 중이었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장례식장이 아니면 얼굴 보기가 힘드네. 친척 분이 한 마디 건네셨는데 남편은 그저 아무말 없이 조용히 웃고

나는 그 옆에서 장식처럼 서 있었다. 사회생활이 왕성한 분은 아니셨고 말년에는 아프셨기 때문에 장례는 조용히 치뤄졌다.

국화를 영전에 올리고 묵념을 하고 상주와 맞절을 하고 먼저 와 계셨던 시아버지와 함께 육개장을 먹으면서 앉아있는데 

우리 뒤편은 시끌벅적했다. 친척 분의 초등학교 동참 모임이라고 한다. 

아직도 초등학교 동창 모임이 있구나. 비사교적인 성격에 모임이라면 질색을 하는 남편은 그저 어리둥절.


아버지를 집 근처까지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과 초등학교 모임에 대해 이야길 했다. 

그들의 30년 넘도록 지켜오는 우정에 대해 말하면서 신기해 하다가 

결혼 후 돌아가신 가족들에 대해 이야길 나눴다. 한 분 한 분 돌아가실 때 마다 함께 하지 못한 시간에 대해 아쉬워 하긴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면 어느새 모든 것을 다 잊은 듯 생활하고. 





장례식장에 가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계절이 바뀔 때면 부고 소식이 여기 저기서 들려오고.  

얼마 전에는 남편이 사용할 수 있는 육아휴직 제도에 대해 말하다가 

그런데 다시 돌아갈 수는 있나 라는 질문에 우물거리는 남편을 보고 아차 싶었다. 



경선생이 어릴 때 남편이 메신저로 희끗해지는 머리를 걱정하며 생리적인 노화에 대해 고민했던 시기가 있는데

이제 우리는 언제까지 일할 수 있게 될까. 한껏 수동적인 태도로 그러나 매우 현실적인 자세로 

주자매의 학업을 어디까지 서포트를 해줄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서른 일곱 살아온 경험에 의하면 고민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그분이 뜻하신 대로 내가 잠시 레일을 떠나 있더라도 돌아가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남편의 말대로(=원하는대로) 생민스러운 하루 하루를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비싸면 사지 않고 돈은 쓰지 않는 각오로 매일 가계부를 펼치는 것이다. 

문구류에 있어서는 시작부터 전문가스럽게 진행하고 싶은 나의 마음 자세를 스튜빗, 장비병이라며 

여러 차례 남편이 지적하여 서점에서 파는 가계부를 사고 싶었지만 집에 돌아다니는 노트에 매일의 지출을 기록하기로 했다. 

오늘의 총 지출은 도서관 주차비 1,000원이어서 나름 만족스러운데 내일은 어마어마한 지출이 예정되어 있다.

내일의 일은 내일의 나에게 넘기고 오늘은 그뤠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