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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Good for you

by 와락 2017. 11. 2.



분명한 것은 통장 잔고는 줄어들고 있지만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채워지고 있다. 


집에 돌아오는 길 동기 선생님과 이야길 나눴는데 

그녀도 나도 전과 다르게 형언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어 든든하다고.

학교를 다니면서 제 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은 아니고(이 역시 불안정하고 또 첩첩산중이므로)

그럼에도 수업 중에 교수님들이 풀어주시는 이야기를 통해, 또 나눔의 시간을 갖으면서

자신을 관찰하고 감정을 들여다 보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채워지는 것이 아닐까. 감사한 일이다.




최근에는 교회에서 8주간 진행하는 마더와이즈 교육도 받고 있는데

내가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었는지 수업에 참여할 수록 뜨끔하다. 

사전을 쓰는 모습은 익숙해도(대체 언제 끝날 것인가.인생의 과업인가)

성경책을 읽는 모습은 낯설었는지 남편은 또 무언가 시작했군 이런 얼굴이지만-



가계도를 그리며 원가족의 융합과 분화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내가 혹시 주자매에게 대물림을 하지는 않을까 싶어 정서통장에 긍정적인 정서를 쌓으려 하는 중이다. 

아이들이 언제고 힘들때 마다(나도 마찬가지고) 빼 쓸수 있도록.




아이 친구 엄마들과 만나도 전보다는 편하다. 시간이 해결해 준 것도 있지만. 

논자시 통계 과목에서 패쓰를 못했는데도 괜찮았다. 자책감도 줄어 들었다. 

친한 언니가 나의 로망이던 세계여행을 다녀와서 책을 출판했다. 부러움이 없었다면 거짓말, 그 다음 감정은 멋있다였다. 

왜 나는 못했지, 대체 왜 못갔지. 누구 때문이었나. 자동적 사고에서 조금은 벗어났다. 

시기, 비난, 자책 3종세트는 언제나 나와 함께 한 못난이 친구들이었는데 점점 멀어지고 있다. 

내가 일부러 그 아이들을 떼내려고 한 것은 아닌데 이제는 헤어질 때가 되었다 보다. 



아이 친구 엄마에게도 Good for you

시험에 패쓰한 학교 동기들에게도 Good for you

세계여행 책을 쓴 언니에게도 Good for you 




아직 '비교'라는 엄청난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게 겨우 얕은 언덕을 올라간 기분이랄까. 

겨우 언덕을 올라온 것 같지만 다른 사람을 보기 보다는 내 아이에게, 그리고 나에게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에게 물도 건네주고 땀도 닦아주고. 

 

서른 일곱의 가을에서야 해방감을 느낀다.

이 역시 조직 바깥에 있기 때문일 수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