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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나를 찾으시는 이유

by 와락 2017.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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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은 귀신에게 사로집혀 있던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일곱 귀신을 쫓아내셨다. 

큰 죄를 용서받은 마리아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남달랐다. 그래서 주님이 다시는 그녀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시리라는 확신이 필요했다.


 베드로는 주님과 다른 형태의 만남이 필요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예수님을 모른다고 노골적으로 부인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화해의 시간이 필요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이었으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그에게는 새롭게 찾은 믿음을 표현할 수 있는 가족 사이의 친밀한 시간이 필요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고문했다. 

그는 예수님과 대면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 각 사람은 나름의 '역사', 즉 문제의 근원이 되는 과거가 있었고, 주님과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위의 네 가지 상황 중 당신에게 해당되는 것이 있는가? 

주님은 그런 부분들을 정확하게 아시고 사랑으로 각 사람을 찾아가셨다. 

이제 주님은 우리를 찾으신다. 

 

                                                                                                        - 마더와이즈 자유편 225p-




23살,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 후로 믿음 생활을 했고 어머니와 여동생을 성당으로 전도했다. 

어머니는 희귀병을 앓고 계셨는데 스테로이드약을 하루에 몇 알씩 먹어야 하는 상황이어서 당시 우울증, 공황장애 비슷한 상황까지 겪었지 않았나 싶다. 그 모든 힘든 상황을 성당을 다니시며 기도로 치유하셨다. 동생도 믿음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결혼을 하고 나서 성당을 다니다가 시어머니께서 권사가 되시며 교회로 인도하셨는데 그 결정이 정말 쉽지는 않았다. 

사전에도 미리 양해를 받았던 부분이었음에도 시댁에서 신혼 생활을 하는 나로서는

(당시에 남편이 방어막이 되어 주지도 않았고)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을 뿌리칠 대담함도 없어 못다니겠다는 말을 꿀꺽 삼킨채 표정없이 교회를 다닌지 벌써 10여년.


 힘들 때 마다 주님을 찾았지만 기복신앙 그 언저리를 헤매기 때문에 믿음의 촛불은 하염없이 흔들리기만 했다.

그런 와중에 회사 동료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을 선물로 주었다. 

어찌나 뜨끔한지, 읽을 때 마다 화끈거리는 기분이었는데 그럼에도 교회 생활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의 유언(직접 나에게 말씀하신 것은 아니지만), 인간적으로 어머니를 존경하는 마음 

그리고 신앙 안에서 가족생활을 하길 원하기 때문에 바로 집 앞 성당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선데이 크리스챤으로 매주 주일에 교회를 나가고 있다. 

지난 해에는 교회에서 목사님과 성도들과의 갈등으로 목사님이 바뀌셨다. 이사를 다니느라 이 번이 세번 째 교회인데 

성도들과의 갈등으로 목사님이 바뀌는 것은 두 번 목격했다. 



어느 날은 목사님 설교를 듣는 데 누군가 필터를 앞에 끼워 놓는 것 처럼 

눈 앞이 뿌옇게 되는 듯 하고 머릿 속에 설교 말씀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스크루테이프가 웜우드를 시켜 나에게 작업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저 설교 말씀의 단어들은 내 눈 앞에서 낙엽처럼 떨어지고 

예배가 끝나자마자 식당에 가기 위해 사람들을 밀치며 내려가는

나이 든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얼굴이 찌뿌려졌다. 

교회에 갈 때 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 마다 마음이 불편했지만 어찌해야 할 지 몰랐다. 

사람들과의 교제는 낯설고 목사님과의 만남 역시나 그러하고 늘 그렇듯 조용히 조용히 숨죽이며 다녔다.



그러다가 마더와이즈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서 교회에서 주 1회 하는 중인데

학교에서 하는 부모교육, 가족 상담 수업들과 연계된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럽게 하고 있다. 

집단 상담에서 주로 사용하는 스킬들도 포함되어 있어 정말 잘 만든 교재와 프로그램이다 라며 속으로 평가하고 있는 와중에

위와 같은 문장을 만났다. 



 이들 각 사람은 나름의 '역사', 즉 문제의 근원이 되는 과거가 있었고, 주님과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위의 네 가지 상황 중 당신에게 해당되는 것이 있는가? 

주님은 그런 부분들을 정확하게 아시고 사랑으로 각 사람을 찾아가셨다. 

이제 주님은 우리를 찾으신다. 




바울처럼 주님을 직접 대면한 적은 없고

그 분이 나를 찾아오셔서 음성으로 말씀해 주신 적은 없지만

기도를 드렸을 때 응답을 받기도 했었다. 

그리고 보여주셨다. 내가 바라는 것만 뿐만 아니라 생각지도 못했던(그리고 원치 않았던 것) 까지 함께.







서른 일곱의 마무리도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존재를 드러내시며 나를 찾으시는 주님 앞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답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웜우드의 속삭임을 귀기울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