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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일의 인수분해란

by 와락 2022.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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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일을 인수 분해하고, 역산해서 스케줄을 촘촘하게 짜는 것에 공을 많이 들이는 까닭은, 다시 말하지만 일의 힘을 빼기 위해서다. 일이 높은 파도를 일으켜 우리 일상을 집어삼키는 꼴을 막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 내 일로 건너가는 법 / 김민철 -

 

 

새벽 5시에 일어나(사실은 4시 34분쯤 눈이 떠)

보리차를 따숩게 1분 정도 전자레인지에 돌린 후 

식탁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오랫동안 맥북을 썼는데 엑셀과 더욱 친해지기 위해 신청해서 받은 못생긴 씽크패드.

이 친구에게 애정을 쌓기 위해 제주도에서 산 귤 모양 스티커도  붙여보았다. 

 

 

무엇보다 나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는 ERP 등록 이슈

내가 품목등록코드를 만들어야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새벽부터 ERP 입력화면 앞에 멍하니 앉아 품목 등록 코드 입력부터 막혀서 진도를 못 빼고 있다. 

 

 

품목 등록코드는

A0001로 만들 수도 있지만 

의미부여 코드로 결정할 수도 있다. 

그렇다. 나는 이 의미부여 코드에서부터 막혀 있는 것이다.

품목 계정과 규격과 사이즈로 기록할 것인지

브랜드 코드와 아이템 코드 출시년도 순번 등으로 기록할 것인지

이런 걸 내가 막 결정해도 되나(숨은 뜻에는 잘못하면 어떠나 하는 두려움도 있다)

 

 

2주 전에는 라이브 커머스에도 출연했다. 

상황 상 어쩔 수 없어서. 책임감에 떠밀려 나갔는데 생각보다 할 만했다.

목소리는 비염 때문에 잠겨서 극도의 코맹맹이 소리였고 얼굴은 메이크업을 따로 받지 않아 기름에 번들거려

보기 불편했으나 내가 아닌 회사를 드러내는 일이니까. 직업인으로서의 충실함이므로 할 만했다.

 

'팀장님과 광고주들 앞에 두고 나는 자주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자주 했다는 이야기는, 잘할 기회도 실패할 기회도 그만큼 많이 주어졌다는 뜻이다. 점점 나는 어떤 프레젠테이션 앞에서도 떨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 내 일로 건너가는 법 / 김민철 p22 

 

외부에 회사에 대한 소개와 제휴를 하다 보니 누군가에게 회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자주 할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겠지-

요즘은 '와 진짜'(내 능력치에 미치지 못하여 스스로 절규하며 내는 탄성'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머리를 치며(시냅스가 연결되어 아이디어가  샘솟고 일의 능률이 빨라지면 좋겠다) 일하는 중이다. 

 

 

지난주에는  

가도 가도 끝나지 않을 듯한... 김포의 물류센터를 왕복 운전하다 

양 옆의 화물트럭 사이에서 멈칫하며 잠시 또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칫 잘못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두렵기도 하고.

 

 

주말에 동생에게 이야기하니

타성에 젖어 은퇴하고 뭐하나 고민하는 게 아니라

신입사원처럼 현장에서 일하고 있으니 육체는 힘들지만 좋을 거라고 화이팅을 외쳐준다. 

더불어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업무'는 대체 가능한 업무이니까. 

시작과 다지는 건 내가 했더라도 그다음의 단계는 누구라도 할 수 있고.

 

 

 

요즘 경선생이 인수분해를 배우는 중인데 나에게 더욱 절실히 필요한 게 아닐까-

일의 주도권을 나에게 다시 가져오기 위해서 

넘실거리는 업무량의 파도에 질식하지 않고 유능한 서퍼처럼 파도를 타며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이란 녀석을 김민철 작가님 말처럼 '낙지 탕탕이 만들듯'  잘게 나눠 야금야금 해치워 보리라. 

 

 

점잖은 나의 씽크패드 친구. 귤 스티커를 붙여도 아직은 어색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