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는 계속 진화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앨리스의 지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상한 나라에서 그리폰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부탁했을 때, 앨리스는 그날 아침의 모험 이야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어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무의미해. 어제의 나는 다른 사람이었으니까."
-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 데이비드 앱스타인 지음
경선생은 중학교에 입학했다.
유치원 졸업 때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졸업 축사를 읽다가 울기도 했는데
사춘기 아이를 대하는 어머니는 이성적이 되었다고나 할까.
졸업식에도 참석했으나 대견한 마음만 가득했다.
시크한 아이는 친구들과 졸업 사진 찍기도 한사코 손사래를 치더니(겨우 몇 컷만 찍고)
중학교 입학 이후에는 같은 학교에서 배정받은 아이들과 입학식 첫날부터 마라탕을 먹고, 인생네컷을 함께 찍고 급격하게 '무리'의 세계로 들어갔다.
매일 아침 경선생을 포함 5~6명의 아이들이 8시 20분에 집 근처에서 만나 함께 오르막길을 올라 등교 중이다.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수학학원도 다니기로 했다. 수학학원에 가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경선생을 지켜본 결과 오히려 대형학원이 아이에게 맞는 듯싶다.
베이스는 겨울 방학 동안 방 밖에 나오려 하지 않아 권유했는데 다행히 기타 배우는 친구들이 있어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마침 회사 동료분이 사용하지 않는 여분의 베이스와 앰프를 빌려주셔서 집에서 함께 연습 중이다.
3월 이후에는 주 1회, 토요일에만 수업에 가는 중인데 제법 소리가 나고 있다.
위 정도는 일반적으로 아이가 성장하면서 겪는 이벤트라 일상적인데...
무엇보다 놀라운 일은 6년 내내 감투를 쓰는 것에는 질색을 하던 아이가 학급 회장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외대부고에 가고 싶다고 하길래, 특목고는 리더십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하더라. 학급임원이 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은데
영 부담스러우면 수업부장, 동아리 활동이라도 열심히 해보자라고 넌지시 이야기했는데
한번 도전해 보겠다며 공약을 고심해서 생각하더니 당선까지 되었다.
학교 급식봉사도 열심히 하고 있고, 생각보다 중학교 생활을 충실히 해내고 있어 놀랍기도(?)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우리 둘째 시봉이 역시 부회장이 되었다.
올해는 학급임원은 하지 않겠다 공언했으나 친구의 추천으로 임하게 되었다며 당선소감을 넌지시 발표했다.
축하한다. 대단하다 이야기하니 예전보다 으쓱해하는 게 많이 줄어서, 우리 아기 같던 시봉이도 많이 컸구나 싶었다.
언니처럼 가끔은 언니보다 더욱 시크해지고 있다. 사춘기는 이미 시작된 듯한데 언제 끝날지는 기약이 없다.
겨울방학 동안 인테리어 노래를 부르다가 최근에는 패션에 관심이 많아져 자주 가는 아울렛 매장이 아닌
여성 쇼핑몰에서 옷을 사고 싶다고 한다. 다리가 길어 보이도록 상의는 크롭티를 입으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도 하고
매일 아침 언니에게 자신의 의상을 체크받기도 한다. 뉴진스의 어텐션 안무를 동영상을 보고 따라 하다 허리를 무리하게 숙여 다음 날 몸살이 나기도 했지만 그 비트와 리듬감을 온몸에 싣고 양치를 하거나 렌지를 낄 때 거울을 보면서 한 번씩 웨이브를 한다. 어린시절의 흥은 아직도 유효하다.
베이스를 배우는 언니의 영향으로 그리고 교회에서 두 아이가 밴드 활동하면 좋겠다는 엄마의 허영심으로 시봉이도 일렉기타를 배우러 토요일에 학원에 간다. 지난 주 첫 수업이었는데 집에 와서 언니와 달리 연습에 집중하진 않지만 꼭 결과를 이루지 않더라도 아이들의 인생에 '점'을 하나 찍어준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점의 기회비용이 크긴 해서 점점 부담스럽긴 한데(그 비용으로 진짜 내 얼굴의 비립종과 기미를 빼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만) 아이들의 인생이 좀 더 풍요로워 지길 바란다.
아이들이 크면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써내려갈지 궁금하다.
경선생은 중학생이 되면서 엄마가 느끼기에는 초등때와는 다른 인생의 계단으로 성큼 올라간 것 같고
시봉이는 매일 매일 지루함과 환희의 감정을 오르내리며 보내고 있다.
동시에 고학년이 되면서 학원에 가서 10시 넘는 시각에 돌아와 안타깝기도 하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같은 층에 살던 친구와 놀이터에서 몇 시간이고 실컷 뛰어 놀았는데
아이들이 성장하는 속도 만큼 내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도 든다.
누군가가 열정과 끈기가 있는지 묻는 대신에, 우리는 <언제> 그러한지를 물어야 한다.
오가스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 자신에게 적합한 맥락에 데려다 놓으면, 더 열심히 일할 것이고 바깥에서 볼 때 더 열정과 끝기가 있는 양 보일 것이다.>
-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p229-
아이들은 나보다 살아온 시간도 경험도 적고, 접해온 맥락과 범위도 좁은데
이 아이들이 평생 변하지도 못할 것 처럼 걱정만 해 왔던 것은 아니였을까.
오히려 나보다 더 변화된 세상을 살아갈 친구들인데 말이다.
맥락에 아이를 두고 관찰하고 기다려주기 보다 내 프레임에 넣어 평가하고 걱정만 해 왔다.
어제 오늘의 걱정 전문가가 아니므로, 이 걱정과 불안이 하루 아침에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옆에는 보다 체계적으로 함께 걱정하는 전문가가 한 명 더 있기 때문에 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적합한 맥락과 범위를 접할 수 있도록
가능한 영역에서(물리적으로도) 도움을 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