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뒤로 하루를 더 휴가 낸 게 살짝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아직 손에 붙지 않은 일 더미에 쌓여 정신 없이 보낼 하루가 걱정되서
오전 7시 20분 셔틀을 타고 출근했다.
8시부터 바로 결재 내역들을 확인 하고, 품의를 쓰고, 계약서 현황을 정리하고,
메일을 보내고, 10원이라도 더 네고치려 하는 이 모든 것들이
이미 베테랑인 다른 팀원분들에게는 '일상'이 되었겠지만,
나는 하루 하루가 참으로 길다.
그리고 오늘 집에 돌아 오는 길,
흔들리는 셔틀에서 트윗을 보다가,
여준영 대표님의 '일주정'이란 멘션을 보니
그간 나의 일주정 친구들이 생각났다. 남녀를 불문하고, 일로 맺어진 끈끈한 연대.
상사 혹은 외부업체에 대한 깨알같은 뒷담화,너만 알고 있으라 했던 비밀이지만 다음날이면 나만 알면 다 아는 소문. 맥락도 없는, 지금 보면 '도대체 왜'가 절로 나오지만 당시에는 서로 치켜세워주며 엄지 손을 번쩍 들었던 문서들, 피피티 배경 색깔과 도형에 집착했던 날들. 그리고 무엇보다 같이 회의를 다니고, 의견을 교환하고, 밥을 먹고,커피를 마시면서 나눴던 오로지 '일'과 관련된 끊임없는 수다. 그러고도 부족한지, 불평 혹은 투정할 일만 생기면 콜라 혹은 아이스티를 두고 얼음을 오도독 씹어가며 나눴던 폭풍대화.
비슷한 연배, 취향의 사람들을 만나 동질감을 느끼고
'함께'라는 걸 잠시마나 느꼈었던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이렇게 한라산이 보이는 제주에서 느끼고 있다.
아직은 전학생 코스프레 중이기도 하고,
이곳 공기는 사뭇 다르기에, 웃음조차 마구 흘려선 안될 것 같다.
뭐. 아직 나만 그럴지도.
어찌 되었든, 일주정 친구들은 이제는 모두 흩어져 있어, 예전 같지도 않고.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기는 수 밖에.
놀라운 건,
한달 여 만에
사방이 유리건물이라 햇빛 가리개로 덮여 있는 사무실의
500원짜리 김찬벅스 앞에 모여 있는 그들을 그리워하게 될 줄이야
나는 점심시간에 메뉴 선택에 약간의 고민만 하면,
맛있는(오늘 짜장밥은 매우 괜찮았다!) 음식이 나오는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바로 한라산이 보이는 사무실에 올라와 마종기 시인과 루시드폴이 쓴 책을 읽는 호사를 누리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 아직 유채꽃이 피지 않아서일거야.
꽃내음을 맡고, 텃밭동호회 활동(올해는 씨감자를 심는다고 했어!)을 하게 되면, '그들은 누구?' 하게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