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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따로 또 같이

by 와락 2013.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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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이는 친정 집에 맡기고, 시성이만 데리고 내려왔다.

비행기에서 연신 땀을 흘리며 칭얼대는 작은 아이 덕에, 허리를 살짝 세우기만 해도 뻐근하지만.

도착하자마자 난장판이 된 집을 빠르게 정리하고 밥만 지어 간단히 저녁을 먹이고 따뜻한 물에 깨끗하게 씻겨 

품에 안아 재우니 곤히 잠이 든다.



수요일, 남편의 전화에 두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

중환자실에 계신 어머니를 뵙고, 후회와 기도, 한탄, 자책을 번갈아 가며 하다가

겨우 눈을 껌벅이고, 천천히 자극에 반응하며 조금이나마 의식을 회복한 듯한 어머니를 뒤로 하고 내려 왔다. 

아버지는 이제 그만 울자고, 어머니가 다 들으시니 좋은 말만 하고, 희망을 가져보자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처럼 어머니는 조금씩 발가락도 움직여 주시고, 미간도 찌뿌려보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그 자리에서 해 주셨다. 저렇게 아픈 와중에도, 남편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온 몸으로 말씀하시는 어머니가 

안쓰럽고 안쓰럽다. 




중환자실 면회시간이 끝나면, 촉촉해진 눈시울, 까칠해진 얼굴로 서로의 끼니를 걱정한다.

밥맛은 없지만, 서로를 위해 모래알 같은 밥알을 꾸역꾸역 삼켜 입안으로 넘기고

내일 아침 면회시간에 보자며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그제서야 생각난듯 안부를 묻고.

한껏 긴장되어 있던 얼굴 근육들이 조금씩 일그러지며, 입꼬리를 올리는 것 자체가 죄스러운듯

어색하게 웃으며 일상을 전하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다.

그 말이 이렇게 실감나는 건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건지, 아니면 두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인건지.

어머니는 저렇게 아프신데, 철부지 우리 아이들은 어린이날 선물로 받은 백설공주를 보며 즐거워하고,

심술이, 투덜이, 졸음이.. 일곱난쟁이들의 이름을 재잘거리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나 눈부시다. 

사는게 다 이런건가. 




잔인한 4월이 겨우 지나가나 싶었는데, 또 다시 시험대에 오른 기분이다.

이 시험은 언제까지 계속 될까. 

내가 지금 회사를 다니는 게 맞을까. 모든 걸 뒤로 하고 어머니 곁에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그럼 애들은 어쩌지. 

그러면서도 밀린 메일들을 읽으려 메일함을 열고, 뒤늦게나마 친구의 생일 축하 문자를 보낸다.





어머니가 치르시는 전쟁과도 같은 하루 하루가 생각했던 것 보다 길어질 수도 있다.

혼자 궁상을 떨것도 없고, 그저 기도하며 내게 주어진 일상들을 잘 버텨내면 될 것이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말 한 마디 내뱉지 못하며 인내하시는 어머니에 비하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따로 또 같이, 감히 비교할 수 없지만 

남편도, 나도, 아버지도, 형님도, 어머니도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