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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너에게 배운다.

by 와락 2015.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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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있잖아.
나는 생각 주머니가 있어.
거기에는 좋은 말만 담고 나쁜 말, 슬프고 화나는 말은 쓰레기통에 다 버려야 해
 
어떤 말이 나쁜 말이야?
엉 화내는 말. 소리지르는 거.

좋은 말은?
예쁜 말. 미안해 이런 것도 좋은 말이야.
 

발레 학원에서 선생님이 이렇게 이야기 해
여러분. 마음의 스케치북 폈나요?
 
그게 뭔데?
엉. 발레 하기 전에 마음의 스케치북을 펴서
선생님이 알려준 거를 마음속에 그리는 거야.

아. 선생님이 알려주신 동작들을 잊지 않게
기억해 놓는 거야?
 
응. 자. 이렇게 하는거야.
 
 

지난 주 오픈한 연봉 및 역량 평가 자료를 보고
바닥까지 내려 앉는 기분이었다.
안그래도 좁은 어깨를 자꾸 움추리다 보니 없어질 지경.
한 없이 작아져 가고 있는 내 앞에서
우리 경선생은 유연하게 허리와 어깨를 펴고
1번 동작을 내게 알려주는라 매우 바쁘다.
 
 
8100번 버스가 오면
우루루 달려가는 사람들 틈에 껴서
필사적으로 뒷문 계단에 매달려 계단 위에 올라가 땀을 훔친다.
겨우 내 몸 하나 설 수 있는 공간을 얻게 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이어폰을 찾아 끼고 팟캐스트라도 들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고.
 
 
하지만, 지난 주 결과를 본 이후로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여기는 어디며 나는 누군지. 차창에 비치는 내 얼굴이 너무 낯설어서
마음을 어디에 둘 지. 정말 씁쓸했다.
 
 

비록
내 역량은 미약하나
 
무려
생각주머니와 마음의 스케치북을 가진
자식이  있으니
그걸로 상쇄-물론 쉽지 않지만- 해 보련다.
 
 
몇 년간
연이어 아이를 낳았고, 출산 휴가를 사용했고,
돌고 돌아 조직도 두 차례 이동했다.
결과를 받아 들여야지.
왜 이래. 쿨하지 못하게.
 

옥상달빛도 이야기 하잖아
 
어차피 인생은 굴러먹다 가는 뜬구름 같은
질퍽대는 땅바닥 지렁이 같은 걸
 
그래도 인생은 반짝반짝 하는
저기 저 별님 같은 두근대는 내 심장
초인종 같은걸, 인생아
 
 
두 눈을 반짝거리며
정확하고 똑부러진 말투로
마음의 스케치북에 3번 발레 동작을 그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경이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언니가 하는 동작을 어설프게 따라하다 넘어지는 성이도 있다.
꺄르르. 꺄르르.
 
 
 
심지어 오늘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 2명 중에서 1명을 만나기로 한 날이잖아.
 
어서 어서 퇴근하고
친구와 오징어를 씹으며 이러쿵저러쿵 하다 보면
스팀다리미의 강력 분사로 좍 펴진 주름 처럼
움추린 나의 어깨들이 조금씩 펴질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