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경이는 마음선생님을 만나러 몇 차례 상담 센터를 다녔다.
TV에도 나오고 책도 여러 권 내신 유명한 소아정신전문의 이름을 달고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우리는 이 곳에서 두 어 번 선생님이 바뀌면서 적잖이 실망하고 10회기도 못채우고 그만 두었다.
회기 마다 내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지만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경이를 위해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방문했던 터라
매 회 부모에게 주는 과제 수행도 열심히 하고, 주별 리포트도 각별히 작성하여
별도 메일로 제출하는 듯 우리 부부는 최선의 노력을 했었다.
끝까지 잘 마무리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 이후로도 상담 선생님이 부모에게 준
'미션'은 계속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그 미션은
온전히 아이를 받아 들이고 기다려주기
상담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우리 부모의 엄정함으로 인해
아이가 적당한 시기에 제대로 된 '떼'를 쓰지 못하고 커서 스스로 서는 힘이 약하다는 것인데
이 부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았다.
맞벌이 부부이긴 하지만
주말을 비롯해서 사생활의 대부분 별다른 개인 여가를 하지 않고
네 명이 똘똘 뭉쳐 같은 공간에서 서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가?
아니 뭘 더 해야 한다는 것이지.
주말에 누군가를 만나기 보다는
집 근처를 산책하거나 혹은 도서관을 다녀오거나
집 근방 마트에서 장을 보고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책이나 들춰보다 낮잠을 자고
일찍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맥주에 감자칩을 곁들여 무한도전을 보면서 깔깔 거리는 것을
여가의 낙으로 삼는 근거리 생활자 우리 부부가
삼척, 지리산 장거리 2박 여행을 2개월 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고
사람 많고 복잡하고 시끄러운 것을 싫어해서 축제나 행사는 피해다녔는데
얼마 전에는 에버랜드 연간회원권(2년짜리)를 끊어 격주로 가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지난 주말 지리산에는 다른 가족과 함께 가기도 했다.(시누네 가족 말고는 처음이다)
그저 조용히 커피나 홀짝이며
책장을 넘기는 오후를 즐기길 선호했던 우리는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희미해 질 수록
주자매는 더욱 밝아지고 까르르 거린다.
얼마 전에 지리산에 갔다 올라오는 길에 임실에 들러 치즈 만들기 체험도 했는데
내일 어린이집에 가서 할 이야기가 많다면서 자기들끼리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남편과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서로에게 인정해 주는 것이랄까.
집에 와서도 씻고 곧바로 쇼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고 뉴스를 보거나
혹은 읽다 만 소설책을 펼치곤 했었는데
지금은 주자매와 함께 하는 것, 숙제거나 그림그리기, 풍선던지기 일지라도
그것을 가장 우선으로 두고 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회사에서 돌아와 쇼파와 혼연일체가 되어 충전을 하고 싶은 마음을 꾸욱 참고
남은 배터리를 가동하여 아이들과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남편도 나도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어튼 여름 이후로 가을에 접어 들면서 경이의 원 생활은 전보다 나아지고 있고
나 또한 아이들과의 놀이가 이전보다 편해졌다.
어렸을 적 엄마와 놀았던 기억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어떻게 놀아야 할지
대체 예전에는 친구들과 뭘 하고 놀았는지 가물가물.
무엇이든 어설프게 책으로 배우는 나이기에 엄마와 10분 놀기 이런 책도 읽어가면서
주자매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확실한 것은
박혜란 선생님의 말씀 대로
이 세상에 공짜는 없고, 허투루 보낸 시간도 없다는 것이다.
본인 외에는 모든 것에 무관심한 남편이지만
주자매를 위해서는 다섯 시간 이상의 장거리 운전도
아이들이 먹다 만 식어버린 핫도그도 양볼에 넣어 우적거리는 것을 보면
차가운 도시남은 어디로 갔고 여기 희끗한 머리의 남자는 누구인가 싶기도 하다.
나 역시 얼굴이 점점 더 못생겨짐은 물론 삐뚤어지고 있다며 지적당하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 부모가 되어 간다.
삼척 바다를 보면서
양떼 목장에서 양들에게 먹이주기
바다 열차를 타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해변에서 조개 껍데기를 주워 들고
아빠에게 퍼팅도 배우고
엄마는 실물과 다르게 예쁘기만 하고
누가 뭐래도 내가 최고야(응?)
원유로 치즈 만들기 체험
나도 할거야 끙
이번에도 그렇듯 타이밍을 못 맞추고 사진을...
이것은 모델보다도 사진사의 명백한 실수라고 생각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