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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2016년 12월 31일

by 와락 2017.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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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길에 떨어져 있는 빈 깡통을 줍는 것 같은 기분으로 할 일입니다. 

길에 떨어져 있는 빈 깡통을 줍는 일은 누구의 의무도 아닙니다. 자기가 버린 게 아니니까요. 

버린 녀석이 주워야지 지나가는 사람이 책임질 필요는 없다고 한다면,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그런 일은 모두의 일이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이'입니다. 

어른은 다릅니다. '어른'이란 그럴 때 선뜻 깡통을 주워서는 주변에 쓰레기통이 없으면 자기 집으로 가져가 

분리수거해서 재활용품 수거일에 내다 놓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른입니다. 


                                                                                                <어른 없는 사회> 우치다 타츠루 





서른 여섯을 떠나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이 밤의 끝을 정말이지 붙잡고 싶다)


밤을 새며 일과 과제를 병행하던 날 아침  

퀭한 얼굴로 화장실 거울 앞에서 머리카락에 묻은 하얀 것을 떼내려던 순간 

그것이 흰 머리임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 당황스러움과 서늘함이란.


새치 따위는 없었기에

단언컨대 '노화가 시작되었습니다'를 알려주는 

얄짤없는 나의 생체시계에 마음이 상해 거칠게 흰머리카락을 뽑아 내고 말았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오후

다음 주 경의 졸업 사진 촬영을 위해 주자매와 함께 쇼핑을 했다.

단정한 느낌의 블라우스와 원피스, 타이즈와 구두를 사고 집에 돌아 오는 길

제법 어린이 같은 경이의 얼굴을 찬찬히 보면서 혼자 감회에 젖고 말았다. 




7살 경

내년에는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엄마 나 예쁘지? 엄마 나 잘했지? 

끊임없이 엄마에게 자기를 확인 받으려 하는 경이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한 해이다.

멈추지 않고 애정을 쏟아준 아이 덕분에 나도 한층 성장할 수 있었다. 

여름 이후로 경이는 더욱 여유로워 졌고 어린이집 생활도 편안해 졌다. 

한 달 전부터는 저녁마다 잠언을 한 구절씩 쓰고 낭독을 하는데

정확하고 매끄러운 발음으로 리드미컬하게 읽어 내려가는 경을 보고 있노라면 뿌듯하다. 

동시에 내가 아이에게 보이지 않는 '은근한 기대'를 계속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뜨끔하기도.




6살 봉

언니의 졸업이 너무나 슬퍼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다. 매일 아침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하면서 

도착하자 마자 달려가 친구들의 어깨를 붙잡고 선생님에게 안기는 봉이는 올 한해 은니도 4개나 하고 

동네 병원을 이웃집  드나들듯 하면서 의료비 지출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언니와 함께 뮤지컬 연습반도 다니면서 '모든 게 노래' 인생을 실천하고 있는 중인데

최근 솔이라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할 것이라고 다부지게 이야기 하고 있다. 아까는 솔이에게 줄 편지도 썼다. 

그 다짐이 내년에도 지속될지 지켜볼 일이다. 



마흔 넘은 남편

올 해 여름 시누가 미국으로 간 후 훌쩍 나이 들어 버린 것 같다. 볼 살이 빠져서 그런 것인지.

옆에 있을 때는 데면데면하던 오누이 사이였지만, 피붙이에게만 느끼는 강한 애착과 그 무엇이 있지 않았을까. 

나의 최애이자 육아TF멤버이며 주자매에게는 전능한 아빠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남편.

올 한해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충실하게 보내지 않았나 싶다. 

사람 많은 것과 차 막히는 것을 질색하면서도 아이들을 데리고 전주, 삼척, 거제, 지리산을 다니고

숙소 수영장에서 주자매와의 5시간 가까이 물놀이를 1%의 체력도 남기지 않고 소진. 

평일에 하루 휴가내어 아이들 건강검진 , 에버랜드도 데려가 놀이 기구도 타고, 지난 주말에는 눈썰매까지 태웠다.

덕분에 아이들은 '우리 아빠는 정말 대단해'를 입버릇처럼 말한다. 


 



서른 여섯의 나는 

조직에서는 늘 그렇듯 위기의 시간이 있었고 휩쓸리고 흔들리긴 했으나 잘 버티어냈고

새로 시작한 공부는 체력적으로 힘이 들고 예전보다 암기력, 이해력도 낮아져 이를 어쩌나 라는 탄식만 계속 내뱉었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자기 세뇌를 계속하며 두 번의 학기를 보냈다.

작년에 쓴 글을 보니,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본인 탓을 덜 하고 시성이 처럼 감사하길 기대했던데

절반 정도는 달성하지 않았나 싶다. 





서른 일곱에는 아이 같은 어른이 아니라  길 가에 빈 깡통도 주울 수 있는 어른으로 좀 더 크고 싶다. 

사회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안타깝다고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묵묵하게 조금씩 조금씩 시작해  보기. 2017년 새해의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