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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당신의 어머니는 어떠셨나요

by 와락 2017.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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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동계 워크샵으로 진행 되는 '성인 애착' 강의를 듣고 왔다.

임신 7개월 시기부터 시작하여 말하기 직전 까지 주양육자(주로 엄마)와 형성되는 '애착'의 질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자세, 살아가는 전략이 달라 질 수 있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길 들을 때 마다 등골에 식은 땀이 나는 기분이다. 

바쁘다고 아이를 채근하고 엉덩이를 때렸던 순간들이 떠오르고.

나름 애썼고 노력했지만 몰라서 그랬다고 애써 변명하고 싶기만 하다.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태어나고 직후부터 3년까지, 그리고 사춘기라고 한다. 

아직은 아이들이 어리고, 계속 '변화'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리긴 했지만 

좀 더 일찍 내가 알았더라면, 혹은 나 스스로를 돌아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이미 지난 일.  

그러나 나는 지금도 아이의 입학과 나의 회사 생활을 저울질 해가며

회사를 다니면서 느꼈던 존재감과 인정, 그리고 경제적인 부분을 움켜쥐고 놓치 않으려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육아카페를 들락거리고 엄마표 육아서적들에 밑줄을 그어가며 

매일 매일 아이와의 과제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어디에 있지. 

머리카락은 힘이 없고 가늘어져서 비 맞은 생쥐처럼 달라 붙어 있고 

얇은 피부 사이에 뻥뻥 뚫린 모공과 점차 깊어 지는 주름.

탄력을 잃은 둔부와 가슴, 그리고 멍한 표정. 


주말을 포함하여 평일에도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나마 엄마가 살림을 도와주셔서 아이에게 더 집중할 수 있지만. 

김영하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사람을 안 만나고 혼자 있으면 쌓이는 내적 에너지' 같은 것이 

이제 바닥을 드러낸 것 같다. 







수업 중에 '성인 애착'을 테스트 하기 위한 질문지를 샘플로 나눠주며 

옆의 파트너와 일대일로 진행해 보는 시간이 있었다. 


기억해낼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5세-12세) 당신의 어머니와 당신과의 관계를 표현해줄 수 있는 5개의 형용사나 단어를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소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형용사를 받아 적어 두었다가 나중에 각각에 대해 왜 그 형용사를 선택했는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순서대로 각 단어와 관련된 사건이나 기억을 묻는다. 적절하게 대답을 했다고 생각되면 다음 단어로 넘어가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될 때는 다시 한 번 특정 기억에 대해 묻는다.

처음 언급했던 형용사를 다른 말로 대신하는 경우 처음 언급했던 형용사에 대해 다시 질문한다. 판에 박히거나 전형적인 대답을 하는 경우 좀 더 구체적인 기억을 떠올려 보도록 한다)

당신의 어머니는 어떠셨냐는 파트너의 질문에 나는 아래와 같은 형용사로 우리 엄마를 기억해 냈다. 

"바쁘셨고, 성실하셨고, (나에 대한)신뢰(가 있으셨던 것 같고), (자주) 아프셨고, (자주) 신경질을 내셨다"



언제나 아빠의 사업을 돕느라 본인 몸을 돌보지 못할 정도로 일을 했고
몸이 약했기 때문에 자주 아팠고 참고 인내했으며 그러다 보니 장녀인 나에게 곧잘 짜증을 내셨었다. 


지금은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리고 왜 내게 짜증을 냈었는지, 왜 그런 반응을 보였었는지 이해가 된다.
융통성이 없는 나는 지독히 고집이 셌고 상냥하고 순한 동생과 다르게 어른들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듣지 않았었다. 

그러나 머리로 이해 되는 것이 가슴으로까지 와닿진 않는다. 
이 부분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시경이가 입학하는 한 달 동안 휴가를 내고 학부모로서의 역할에 충실히 보낼 계획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아이의 곁에 없었던 엄마의 이미지는 남겨주고 싶지 않아서 택한 것인데
이후에는 어찌 될지 아직은 모르겠다. 




다만, 시경이가 내 나이쯤 되었을 때 나를 떠올리면 
'바빴다' 는 표현 보다 다른 것을 먼저 생각해 주길... 이것 또한 욕심 일까. 





주 1회에 한 번 정도는 점심 시간에 판교어린이도서관에 가서 

아이들 책을 빌려온다. 회사에 도착해 김밥 한 줄을 사서 사무실에 들어가는데

이렇게 '열심'으로 빌려 온 책들을 다행히도 아이들이 좋아한다. 

이 중 몇 권은 사달라고 해서 집에서 계속 듣기도 하고. 



지난 달 말부터 매일(작심삼일이 되어서 삼일마다 다시 새롭게 하지만)

영어회화책 한 챕터씩 필사하고 외우는 중이다. 틈이 나면 아이들 DVD 영상 보여주는 시간에 

테이블에 앉아 아이 동화책도 필사 하고 있다. 

시경이에게 읽어주려다 보니 부족한게 느껴져서 유투브에서 영상도 보고 따라 읽어보고

낭독 연습을 하는 중이다. 



시경이는 암기력이 뛰어나서 문장을 통으로 외우는 편이다. 

줄줄 글을 읽어나가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 통으로 영어 노래를 외우는. 

보이지 않는 탑을 쌓아가는 것 같지만, 허투루 보낸 시간은 없다는 것은 아이와 지내면서 또 깨닫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