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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비오는 수요일 점심 시간 즐거운 데이트

by 와락 2023. 9. 20.


한 단계 올라섰다고 느끼며 한숨 돌리고 나면 앞으로 갈 길이 멀고 여전히 아득하구나 한탄하게 된다. 잠깐 탄식하고는 다시, 오늘 하기로 한 일을 들여다보고 가능한 한 하나라도 더 해 놓는다. 내일의 나를 위해서.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를 나를 욕하지 않도록.
- 퇴근길의 마음 / 이다혜


수요일 비오는 점심 시간이다.
비오는 수요일은 맥락없이 내가 좋아하는 날인데 이런 날은 나와 데이트 하는 것이 소중하다.
혼자 사무실을 나와 순대국을 한 그릇 후르륵 마시다시피 먹고 카페에 밀크티 한 잔을 두고 앉았다.


나와 잘 지내는 것이 9월의 목표가 되었다.

1. 암보험 가입
2. 퇴직연금 갱신(잘 알아보고)
3. 매일 거울 보고 미간 주름 짓는지 체크하고 자기 전 이마 한 번씩 문지르기(회사 책상에 둔 거울로 간간히 체크도 한다. 웃으시오 나님이여. 미간이 찌뿌려진 채로 50대를 맞을 것인가)
4. 교회 양육훈련 과제 미루지 않기
5. 매일 QT 하기
6. 매일 1끼 이상 과일/야채 식사하기


to do list를 적다보니 위 정도 되는데 나름 잘 지키고 있다. 1번과 2번은 9월 이내 과제로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는 중이고.

얼마 전에 자려고 누웠는데 남편이 내가 전에 비해 말이 많아졌다고 한다. 돌아보니 연애 때에 비해 더 수다스러워 진 것 같기도 하고. 하고 싶은 말들이 넘치는데 풀어낼 곳이 부족한가. 어제 만나뵌 선생님 한 분은 나보고 ‘낭중지추’라는 말씀을 하시며 하고 싶은 말은 남편에게만 하라고 하셨지만 남편은 듣고 싶어 하지 않으므로… 예전에는 기쁘거나 슬프거나 나의 담벼락을 찾아 기록을 하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그 대상이 담벼락이 아닌 사람이거나, 그도 아니면 OTT프로그램을 보면서 머리를 비우려 했던 듯 싶다. 담벼락을 자주 찾다보면 남편에게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 하던 것도 줄어들겠지.


2013년 9월 20일, 10년 전의 나는 제주도에서 귀여운 주자매를 키우느라 바빴는데 10년 후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으려나. 기억력은 계속 감퇴되고 내 머릿속의 어휘사전이 있다면 반 절 이상은 뜯겨나간 것 같은 날들이지만 그 만큼 여유는 생기고 있다. 작은 일들에 여전히 분노하고 감정이 드러남에도 전에 비해 에너지가 부족하니까. 양희은 선생님도 그러셨지 않은가. “그러라그래”  요즘은 자극이 와도 전처럼 성내기도 어려우 ‘그러라그래’ 하고 넘어가기도.


퇴근하려면 5시간 정도 남았지만 마음만은 퇴근길이다. 즐거운 수요일 점심 시간. 새로 구매한 블루투스 키보드로 신나게 타이핑을 하면서 달큰한 로얄밀크티 한 잔에 행복하다 생각한다. 오늘 점심도 즐거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