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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2023년 12월 31일

by 와락 2024. 1. 3.
프로가 되고 싶은가? 더도 덜도 말고 5년만 계속해보라. 그러면 반드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인간의 능력은 나이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변한다. 따라서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는 언젠가 찾아온다. 
- 난문쾌답, 일경컴퓨터 2008년 3월 24일 / 오마에 겐이치

 
 
 
 
22년 연말을 회고하며 글을 쓸 때 23년의 키워드가 무엇일지 기대했었는데
잠잠히 돌이켜 생각해 보니 '후회 없음'이었다. 
 
 
(실행까지 이어지지는 않는) 후회와 반성이라면 자신 있으므로 
후회 없이 임하겠다는 각오는 나로서는 대단한 마음 가짐이었다. 배수진을 친 느낌이랄까.
22년 연말에 닥친 불안함, 좋게 말하면 직관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 어떤 쎄한 느낌에 사로 잡혀
회사에 제안 아닌 제안을 하게 되고, 결실을 맺으려 정말 고군분투 했다.
어휘력이 부족하기에 '고군분투' 외에 다른 단어를 대체할 수도 없다.
사표를 늘 책상 서랍 한편에 두고 일하는 기분이었다. 
중간에 멤버가 퇴사하고 새롭게 오기로 한 인원도 입사날 잠수를 타면서 심적으로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같이 일하는 동료와 서로 다독여가며 잘 버텨낸 일 년이었다. 
 

주어진 일에 대해 불평하거나 다짜고짜 거부해서는 될 일도 안 된다. 모든 일에는 기회가 숨어 있다. 애써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인 만큼 반드시 노하우를 알아내겠다는 마음을 가져라.  - 오마에 겐이치 

 
 
교회에서는 새롭게 봉사도 시작했다.
예전처럼 교사 봉사를 하면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 내내 사탄의 시험에 걸릴 것 같아 안 해봤던 '방송부'를 신청했는데 몇 개월이 지나고 보니 교회 인터넷 영상 편집과 쇼츠를 만들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 영상 편집을 6월 말쯤 시작해서 쇼츠 영상은 7월부터 제작했는데 그 이후로 주일 오후는 통째로 영상과 씨름 중이다.
어느 날은 약 8시간 동안 자꾸 다운되는 맥북을 붙잡고 프리미어를 컸다 켰다를 반복한 적도 있었다.
한 번은 금요일 퇴근길 수요 예배 영상을 일부 편집해서 쇼츠로 올려달라는 연락도 받았다.
집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 8시가 넘었는데 다시 컴퓨터를 켜고 자정까지 작업한 적도 있었다.
 
남편과 엄마는 교회에서 잘한다 고맙다 하니까 인정욕구에 그러는 거 아니냐라고
안타까움을 살짝 묻힌 채 은근히 핀잔을 줘서 마음이 상했다. 
인정욕구도 일부 있겠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주일마다 쉬지 못해 괴롭지만 컨텐츠를 새롭게 편집하여 창작물을 만들고 플랫폼에 업로드하여
조회수가 올라가고 구독자가 증가하는 것을 보는 성취욕구가 가장 컸던 것 같다.
전체 구독자수는 전년 대비 약 200여 명 증가되었고, 쇼츠로 인해서는 22명 정도 올랐다.
아직 1천 명도 안 되지만 매주 성실하게 미디어 사역을 하고 있다며 스스로 세뇌시키고 있다.
그러나 실상 말만 이럴 뿐 하는 동안 계속 불평 중이다.
백업자도 없고 가끔 예배 라이브 자막 봉사도 대체자로 불려 가고 있어 하루 종일 교회일을 할 때가 있는데
이 불평의 원천은 부족한 신앙심과 더불어 출근 전날 온전한 반나절 이상의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주일 아침 예배 중에 반성하면서 회개하고 오후에 다시 맥북 앞에 앉아 투덜거리는 주일을 반복했던 23년이다. 
 
그리고 주 1회 구몬 중국어를 시작했다. 말이 중국어 시작이지... 정말 정말 시이이이이이작 느낌이다.
중국어의 목표는 회사에서 하는 업무와 관련이 있는데 실상 대부분의 업무는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영어 실력을 더 쌓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 앞날은 어찌 될지 모르니 시작한 나를 격려한다.
 
더불어, 퐁당퐁당 주 2~3회씩 꾸준히 달렸다. 
3월 동아마라톤 10km,  10월 스타일런 12km, 11월에는 하프마라톤도 완주했다. 
끄적이다 보니 이런저런 일들을 벌리며 분주하게 보낸 2023년을 잘 버텨낼 수 있었던 건
달리기로 쌓아 올린 체력 덕분이었지 않나 싶다. 
 
 
 
 
경선생은 부쩍 성장했다.
중학교 입학 전에는 집에서 빈둥거리는 모습을 보고 잔소리하는 나와 극심한 갈등을 겪기도 했다.
이후 둘만 따로 기분 전환 겸 성수동 데이트도 하고 소피텔에서 남편의 배려로 하룻밤 숙박도 하고 왔다. 
관계에 있어서 무언가를 했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은 아닌 듯...
물론 추억을 켜켜이 쌓아 올리는 과정은 중요하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엄마도 성장해야 되니까. 아이를 향한 마음의 너비와 깊이가 더 커져야 함을 매년 느끼는 중이다.
이후 안 가겠다고 버티고 버틴 수학학원에 가서 또래 친구들이 몇 시간씩 수업을 듣고
틀린 문제에 따라 추가로 문제 풀이를 하고 오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 나서는 달라졌는데
역시 대형학원이 맞는 아이였다.
70점 맞던 시험 점수가 연말에는 백점도 종종 맞기도 하고...경선생 스스로 공부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듯
하반기에는 국어학원과 과학학원에도 등록해 달라고 해서 토요일마다 학원행이다.
학기 초에는 회장선거에 나가 당선도 되었다.
초등학교 시기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친구들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다.
그래도 매일 만나 등교하는 친구들도 생겼고, 방학 전에는 같이 마라탕도 먹고 코인노래방, 인생네컷을 찍고 오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관계로 인해 고민하는 동생에게 스스로를 돌아보는 객관화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조언도 해줬다.
단짝친구랑만 지내다 그 친구가 전학을 간 후 외톨이가 되어 버린 기분을 느끼며
본인을 사회화하기 위해 애썼다는 일련의 과정과 소회를 동생에게 말하는 경선생은 여섯 살 때와 변한 게 없다.
여섯 살 때도 경선생의 그림을 부러워하는 시봉에게 언니도 처음부터 그림을 잘 그린 것은 아니라며 일장 연설을 하곤 했다.
 
 
 
시봉이 역시 격렬하게 사춘기를 겪고 있는 것 같다. 
희로애락의 감정 진폭도 크고, 그 휘몰아치는 감정들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할 때도 있어
폭풍의 언덕에 올라가 있는 시봉이 같은데 아마 내년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천천히 잘 내려오지 않을까 싶다.
칫솔질을 할 때도 밥을 먹기 전에도 누워서 자거나 시청할 때를 제외하고는 늘 몸을 흔들고 다닌다.
대부분 아이돌 댄스를 따라 하거나 홍박사를 아세요라는 춤을 추거나 개다리춤 같아 보이는 틱톡 등에 유행하는 춤을 춘다.
영어학원을 진심으로 좋아하는데 특히 디베이트 수업은 꼭 가고 싶다고 한다.
추측컨대 외국인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나무라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며 대화를 해 주시기 때문이 아닐까.
규칙을 중요시하는 부모 밑에서 많이도 혼나면서 커서 그런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다가도 하는 행동을 보면 나도 모르게 잔소리가 나온다.
시봉아 옷은 걸어놔야지. 핸드폰은 늘 제자리에 두고. 양말 벗어던지지 말고 세탁 바구니에 넣고...
매년 좋아하는 카테고리가 변하는 데 인테리어 키워드는 꾸준히 애정하고 있다.
원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아 요구도 많은 시봉이의 그 호기심과 에너지가 놀랍기도 하다.
엄마인 내가 지켜줘야 되지 않을까 싶은 책임감도 들고...
내년에도 여전히 인테리어에 대한 열망이 식지 않고 지속될까 궁금하다. 
 
 
머리에 점점 하얀 눈이 쌓이고 있는 남편은 주 3회 이상 운동 루틴을 지켜오고 있다.
남편 내면의 어린 체육인도 이쯤대면 청년기 정도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좋아하는 농구는 주말에도 꾸준히 참석 중이다.
오늘도 슛을 넣었냐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여전히 직장인 농구모임에서 실력이 아닌 나이로 넘버투 인지도 묻지 않는다.
노년을 대비하여 근력과 유연성, 저속노화를 향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구나.
건강검진 이후 생체나이가 30대 후반이 나왔다며 환하게 웃는다. 
(아이들에게는 엄마보다 생체나이가 더 젊다며 한껏 의기양양하기도 했다...)
연초에 성가대 봉사를 시작했는데 베이스 파트를 맡아 주일마다 연습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 중이다.  
직장 이야기는 극도로 하기 싫어하고 아침에 꾸역꾸역(이지만 성실하게) 회사를 가는 남편의 신기한 점은
가끔 연말에 포상을 받아온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페라가모 허리 벨트를 받았는데 필요 없다고 
내 가방으로 바꿔준다고 이야기하고 잠시 검색을 하다가 쇼핑백 그대로 침대 옆에 두고 있다. 
조만간 그 벨트가 내 가방이나 선글라스가 될는지 남편의 허리를 빛낼지 사뭇 궁금하다. 
 
 
 
그리고 우리 주바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귀염둥이 바다와 놀아주는 시간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인지 할 수 있는 말도 크게 늘지 않았다.
아침 일찍 온 식구들이 나가고, 오후에 아이들이 잠시 집에 들렀다 다시 학원행
어쩔 때는 하루 종일 집에서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바다라서... 가끔 보고 있으면 애처롭다. 
친정어머니는 새를 왜 키우냐고 새털이며 비듬 날아다닌다고 질색을 하셨지만
지금은 가족 중 가장 바다를 애정해 주고 계신다. 
어머니가 집에만 오시면 바다의 깃털 때깔부터 달라진다.
할머니를 주양육자로 삼아 스마트폰 위에 올라가 유튜브도 같이 보고
요리할 때도 어깨에 앉아 있고 꾸벅꾸벅 졸 때를 제외하고는 옆에 꼭 붙어 있다.
어머니가 '우리 바다가 얼마나 외로웠을고'라고 이야기하시면 정말 알아듣는 듯 '삐익-' 거리며 맞장구를 치기도 한다.
아침에는 흑임자죽, 샤인머스캣, 딸기, 깨, 가끔은 튀밥까지 어머니 옆에서 애기처럼 지내는 우리 바다를 보니
주자매들이 왜 어릴 때 몸무게가 백분위 90% 이상이었는지...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사랑앵무는 7~10년 정도 산다고 하면서 벌써 바다가 중년이라고 남편이 이야기할 때면 슬퍼진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가족과 오래 지내길 바란다. 
 
 
 
돌아보니 23년에 처음으로 유럽여행도 다녀왔다. 
난생처음 유럽이라 아이들과 어디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다녀온 이탈리아. 로마, 피렌체, 베니스. 
사춘기 주자매와 많은 갈등과 혼돈 속에서 다녀왔지만
다녀오니 23년에 가장 잘한 일은  '이탈리아' 여행이라 손꼽는다.
이후 카드값 후폭풍이 있었기에 남편에게는 따로 묻지 않았다. 
 
 
 
작년에는 23년의 키워드로 '지치지 않는 기대'를 기대했고
회사에서는 '버텨내기'에 충실했으나 그럼에도 잘 생각해 보면 
지루한 미팅에도 점심에 먹을 뜨끈한 국물에 힘을 냈고 
계속되는 거절과 노력대로 나오지 않는 숫자들에 속상할 때는 
나는솔로 16기 대환장파티에 빠져 현실을 잠시 잊을 생각에 주말을 기다렸던 것 같다. 
쾌적한 날씨의 하늘만 보면 달리러 나갈 생각에 설레고
하프 마라톤 전날에는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 전날처럼 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2024년은 어떤 키워드로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가려나.
오마에 겐이치 선생님 말씀처럼 인생을 바꿀 기회는 언젠가 찾아온다 하므로
후회없이 버텨내는 것에 급급했다면 주어진 일을 소중하게 그리고 즐겁게 해보기로 한다. 
 
 

피렌체, 미켈라젤로 언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