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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재즈와 함께 마무리한 2023년 우리 친구들 모임

by 와락 2023.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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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군은 자신을 오래 성찰하고 내면의 진실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에요.

흔해 빠진 재능이 아니죠.

대부분은 애당초 있지도 않았던 체면을 지키는 데 급급해서 인생의 태반을 낭비하는 데 말입니다.   p 24

- 기나긴 이별 / 레이먼드 챈들러 

 

 

 

2주에 한 번이던 만남이 점차 줄어 연례행사로 될 법하던 즈음

정지가 연말에는 만나지 않겠냐 제안하여 23년이 지나기 전 소집된 우리 친구들의 모임

 

모임을 약속하기까지가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파워 J가 있어 장소 섭외부터 착착 진행되는데

이번 모임도 성수에서 진행하기로 하였다.

그렇다. 중년의 여인들은 핫플레이스에서 MZ세대들 틈에 껴서 젊음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토요일 경선생의 학원 스케줄이 빠듯하여 남편일정을 확인한 후 

서울숲 공원에서 달리기까지 할 계획도 짰는데, 그 순간부터 설레기 시작했다.

서울숲에서 토요일 오후 달리고 사우나에 가서 샤워를 한 후 우리 친구들을 만나러 가야지.

 

당일 아침 눈발만 날리지 않았더도 실행까지 옮겼을 터인데...

그러기엔 너무 추워서...서울숲 러닝은 포기하고 

집 근처에서 간단히 조깅하고 모임에 참석했다. 눈발을 헤치며... 

 

 

경기도민이 서울을 가는 날은 매우 용기를 낸 날이라서

작정을 하고(약 1시간 30분 동알 지하철 여행을 버틸 준비) 가는데

운이 좋게도 지하철 타자마자 앉게 되어 편하게 전자책을 읽으며 출발했다. 

당근에서 구매한 이북리더기, 왜 이걸 이제야 샀는지 무릎을 치며 즐겁게 읽고 있다. 

우리 친구들에게 가볍고 눈이 편하다고 으쓱거리며 자랑을 했는데, 페이지 넘길 때마다 나오는 화면전환이

오히려 눈에 더 피로도를 준다고 타박만 받았다. 

 

 

 

도착하니 서울은 왜 이리 추운가.

빌딩숲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에 조금 과장을 하면 날라갈 뻔했다. 

정지를 지하철역에서 만나서 같이 오는데 보폭을 맞추고 싶었으나 추워서 친구를 돌아볼 틈 없이 빠르게 약속장소로 이동했다. 정지 말로는 너무 빨리 뛰어가듯 걸어가서 붙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오양이 꽃할배의 이순재 할아버지랑 비슷한 거 아니냐 놀렸으나 부인할 수는 없어 그저 듣고만 있었다. 

 

 

덜덜 떨다 1차 약속 장소에서 시그니처 메뉴인 크림 라떼를 마시고

2차로 계획한 식당으로 이동해서 식사를 한 후 

모임의 클라이맥스인 재즈바 옮겼다. 저녁 8시 오픈이라 너무 추워 잠시 갈 곳을 찾다 

미국식 도넛 가게에서 들어갔는데, 눈도 파란 백인 젊은 여성이 또박또박 한국말로 주문을 받아 놀라웠다. 

가속노화를 앞당기고 있구나 한탄하며서도 커피 한 모금 도넛 한 입을 먹다가 재즈바로 향했다. 

 

이곳이 유명한 성수동의 재즈바란 말이냐. 후훗

지하로 이동하는데 어두워 잘 보이지도 않고, 심지어 퀴퀴한 냄새도 나는 것 같아 미간이 찌푸려졌는데

어두워 그 표정은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은 것 같다. 

 

모임 전 주 에베소서 5장 18절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을 받으라)

말씀을 암송했던 직후여서 와인 한 잔도 되도록 마시지 않겠다 다짐했으나 

우리 친구가 와인은 먹었지만 술취하지 않은 것이라며 애써 격려해 준터라 와인 2잔이나 마시게 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어쩌면 당연하게도?) 취하지 않았다. 

 

 

외국 여행에서 재즈바를 다녀 본 친구들과 달리 나는 라이브 재즈바는 처음 가봤는데

실로 흥겹고 재미있었다. 친구가 찍어준 영상을 보면 연말 아이들 장기자랑에 와서 손뼉 치는 폼이긴 하지만 

몸으로 표현이 안되었을 뿐 내적으로는 재즈 소울 충만함을 받은 날이었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만남도 모임도 많이 줄었고 이로 인한 대인관계도 정리된 듯 한데 

우리 친구들만큼은 레이먼드 챈들러 소설의 구절처럼 '애당초 있지도 않은 체면을 지키려' 노력하지 않는 모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 역시 20대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긴 하지만....(카카오 주식 어쩔... 대출이자, 아이들 교육 등) 

 

 

이 모임은 계속 될 것이고

우리는 점차 나이가 들 것이다.

하루키가 말한 마흔이 넘으면 들릴 수도 있다는 먼 북소리는 이미 멀어진 것 같고

김광석은 애절하게 '서른 즈음에'를 불렀으나  지금 돌아보니 서른은 어린애다 싶다. 

 

이 모임을 하고 나서 2주 정도 지났나...

배우 이선균이 목숨을 끊었다. 

나의 영원한 박동훈 부장님이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 같았는데

그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박동훈 부장님 마저 지구에서 사라진 것 같아 무척 슬펐다. 

 

 

나에게 후계동은 없지만

후계동의 조기축구회 멤버들처럼은 아닐지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 다짐하며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우리 친구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아저씨 마지막 대사처럼

그가 하늘에서라도 평안함에 이르기를 바란다. 

 

 

 

장소 : 마크 69

크림라떼와 밀크티

 

장소 : 성수온실

감자전은 다시 먹고 싶을 정도
하이볼

 

장소 : 포지티브 제로 라운지 

 

좋은 공연이었는데, 연주자..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와인은 2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