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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함께

아이들은 자란다15

by 와락 2025.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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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다는 말 밖에 안 나오죠.
제가 저랬으면 '버틸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도 가끔 해요.
자그마치 36년이란 시간
어쩌면 일을 그렇게 진심으로 한 거는 
저에게 더 좋은 엄마이고 싶어서 그랬을 거라 생각해요.
샤이니 키 / 나 혼자 산다 인터뷰 중 




아침에 일어나 운동센터에서 가서 가볍게 근력 운동을 하고 돌아와 경선생을 깨운다.
경선생은 지난 크리스마스에 겪은 작은 갈등 이후 교회를 다니지 않겠다고 했고 남편과 나도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는 듣기 싫어하지만 시어머니의 새벽 기도 후에 태어난 딸이 우리 경선생이다. 주님이 경선생 옆에 늘 항상 계심을 잊지 않길 바란다. 
교회 대신 9시까지 도서관에 간다. 새롭게 리뉴얼한 도서관이 쾌적한데 경선생이 애정하는 2인석 자리가 있다. 주로 노부부가 일찍 오셔서 하루 종일 영어책을 읽으시는 그 자리다. 오늘은 경선생이 앉을 수 있었다. 
수학학원 숙제부터 시작할 모양인 듯 한데 대출한 책들을 반납하고 경제경영서적에 있는 책 몇 권 가져오는 시간 동안 핸드폰을 보고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있을 예정이니 5시 이후에 데리러 와달라고 정중히 부탁한다.
중간에 식사 하는 시간, 쉬는 시간마다 유튜브를 본다고 하더라도 긴 시간 도서관에 가서 있겠다고 생각하는 아이가 대견하다. 
엄마 아빠의 잔소리에서 해방돼서 있는 시간이 행복한 것일까. 도서관을 편하게 생각하고 숙제도 마치고 오는 아이에게 고맙다(설령 핸드폰을 보더라도)
 
 
시봉이는 새벽2시까지 학원 숙제를 마치고 잠들었다고 한다. 
주일 오전에 교회를 다녀와서 오후 몇 시간은 아주 느긋하게 본인이 좋아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편안하게 쉬겠다는 생각인데 차라리 밤 시간에 일찍 자고 애니메이션을 덜 보면 좋으련만 그래도 본인이 해야 할 일은 잊지 하고 해내고 있어 대견하다. 
퉁퉁 부은 얼굴로 곧잘 짜증도 내지만 사춘기 감정의 파도 기울기도 점차 완만해지는 모양이다. 
 
아이들 시험 기간과 저녁 늦은 시간까지 학원에 다니는 터라 오래간만에 할아버지를 만나 식사하고 돌아왔다. 
차 안에서는  K-POP에 대한 열띤 토론이 펼쳐진다. 신곡 아이브 노래부터 시작해서 루시라는 밴드, 이름을 잘 모르겠는 아이돌, 이수만 회장님이 새로 만든다는 아이돌, SM에서 (주자매가 좋아하는 엔시티를 별로 챙기지 않고) 새롭게 아이돌을 출시할 거라는 소식. 소싯적 워리워스를 읽으며 주인공들의 계보를 노트에 그려가며 동생에게 알려주던 그 아이는 이제 나무위키를 친구 삼아 아이돌을 디깅하고 여전히 동생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남편과 나는 차 앞좌석에서 주자매의 거침없는 품평에 난도질당하는 이름 모를 아이돌 이야기를 들으며 귀가 멍해지기도 했지만 다행히 아이들은 아빠엄마가 젊은 시절 들었던 쿨, 김성재 노래도 좋아한다. 심지어 학교 수업시간에 '머피의 법칙'이란 노래를 아냐고 선생님이 질문하셨다는데 경선생 본인만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랑스럽게 손을 들진 않았다며(그럴 수도 있지).
 
 
 
 
아파트 단지에서나 마트에서 어린 아이들을 보면 어릴 적 주자매가 떠오른다.
지금은 아기들이 마냥 예쁘지만 정신없이 키우는 시절에는 예쁘지만 걱정이 더 앞섰고, 내가 잘 키우고 있는 것인지 의심하며 때로는 미혼인 동료들을 부러워하기도 하며 지냈다.
 
2013년에 육아서를 읽고 쓴 글을 다시 본다. 
2013년 9월의 나는 연년생 주자매를 제주에서 키우며 아이들과의 시간을 즐기기보다는 잘 키우고 싶어 노력했다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당시 읽었던 책의 내용 중 아래와 같은 글이 있다.
 
"그렇게 괴로워하지 말고 지금을 즐겨요. 눈 깜짝할 사이에 아이들의 어린 시절은 지나가 버릴 거고, 당신은 남은 평생 그 시간을 그리워하며 살게 될 테니까." 골이 울리는 듯한 두통과 케첩으로 얼룩진 셔츠 때문에 당시에는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할머니 말이 진리라는 것을 알겠다. 그 시절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그러니 엄마라서 얻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들을 한숨과 짜증으로 채우지 마라. 가끔식 크게 심호흡을 하고 우리의 여정을 즐기며 가자. 그것이야 말고 엄마 경주에서 승리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출처: https://warak.tistory.com/202 [와락이네 담벼락:티스토리]"
 
 
놀랍다.  지금의 나는 아기 엄마들한테 저 이야기를 해 주고 싶으니까.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그리워하네요. 
아이들이 좀 더 커서 성인이 되면 삐쭉거리는 사춘기 아이들의 뒷통수 냄새도 그리울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엄마를 어떻게 기억하려나
옆에서 손을 잡아주고 기다려 주고 웃어주기 보다 
앞 좌석에서 운전하는 모습, 늦을까 봐 엘리베이터를 잡기 위해 먼저 나가는 뒷모습
요리솜씨는 부족하지만 회사는 열심히 다니는 직장인
사뭇 궁금하다. 
 
 
샤이니 키의 어머니가 36년 다닌 병원을 은퇴하던 날
아들이 같이 와서 기부금도 내고, 퇴근길을 같이 해 주고, 심지어 음식도 만들어 주던데 남의 자식이지만 참 잘 키우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동시에 어머니가 요리를 매우 잘하시는 편은 아니라는 말에 내적친밀감. 키가 어머니의 요리솜씨를 닮은 건 아니구나)
 
 
아이들의 크는 속도를 나는 못 따라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엄마도 사회의 일원으로 자신만의 삶을 성실하게 잘 수행해 내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 분투했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나의 마지막 퇴근길은 어떠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