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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장미의 이름

by 와락 2010. 3. 3.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몇 년 전부터 꼭 읽어야지 벼르다가도,
깨알같이 달린 주석 앞에 망설이기만  수 차례.

드디어 해치웠다.
그래 해치웠다는 표현이 맞을 듯 하다.

호두 한 바구니를 선물로 받았는데 먹고는 싶지만

일일이 망치로 부숴가며 까먹기 귀찮아 미뤄뒀다가 정신없이 와구와구 먹은 느낌?
소화는 잘 안되 꾸역거리면서도 약간의 성취감에 만족하며~

남편은 영화로 먼저 봤다면서,

태교에 좋지 않은 잔인한 장면이 자주 나온다며 걱정했지만.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1327년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묵시록의 예언과 같이 수도사들이 죽어나가는데..
처음엔 단순하게 치밀하게 계산된 추리소설.......... 이라고 생각했지만
추리소설로만 한정짓기엔 부족하다.

중세시대 교회간의 대립(약간은 지루하게 계속되는 청빈에 대한 논쟁,
특히 이 부분은 정말 주석을 따라 읽는 데만도 숨이 찼으니.;)

그리고 마지막에 드러나는, 웃음을 사악한 것이라며  많은 수도사들을 죽음으로 몰아 놓고도,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믿음으로 악마의 대리자 노릇을 자청한 호르헤 수도사(반미치광이=내 눈에는)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자니
그가 이 시대에 다시 부활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윌리엄 수도사(영국인들 특유의 진지한 상황에서 농담을 던지는 매력적인 모습. 후후후. 난 왜 이렇게 이런 모습이 멋있는지...내 눈에 하트 뿅뿅)가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암흑의 중세시대에 걸맞지 않는 자연과학에서도 진리를 찾는 그의 모습에서 셜록홈즈 뿐만 아니라 
CSI 반장을 연상시키는 것이 나뿐만은 아니리..
 


그간 책을 읽으면서... 첫 장부터 고개를 숙이고 작가가 안내해 주는 길을 따라,
등잔 불 하나 들고 놓치지 않으려 안간 힘을 쓰면서
좇아간 일도 많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작가의 해박함에.. 그리고 유려한 문장력을 구사한 이윤기 번역가,

오역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도 겸허히 받아들인 그의 겸손함에 엄지손가락을 연신 치켜들며
마지막 장을 덮으니 안그래도 작은 내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게 보였다.


나이 서른이 되어 겨우 읽은 책이라,
10년 후에 읽으면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텍스트를 좇아가는데 그치치 않고
감히 작가의 생각을 물어볼 정도가 되길
소망할 뿐이나.....
 


#인상 깊은 구절

내 이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23p

그러나 정작 소외자들 자신은 소외된 사실에 눈이 멀어 소외를 의식하지 못하는 부류는 교리에 관심을 갖지 못하는 법인데 이것이 바로 이단이라는 미망인 것이야. 세상에 이단 아닌 것 없고 정통 아닌 것 없다. 어느 한 세력이 주장하는 신앙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그 세력이 약속하는 희망인 것이야. 모든 이단은 현실, 즉 소외의 기치와 같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러한 이단자들을 긁어 보면 바닥에 있는 문둥병 자국이 보일 것이다. 
371p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의 할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비웃게 하고, 진리로 하여금 웃게 하는 것일 듯하구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좇아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 87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