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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오뒷세이아

by 와락 2010. 3. 19.

오뒷세이아는 '오뒷세우스의 노래'라는 뜻으로 기원적 700년경 씌어진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서사시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고전처럼, 책은 읽지 않아도 스토리는 대략적이나마 알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완독해 보기로 했다.
일리아스가 트로이 전쟁을 다룬 서사시이기 때문에 일리아스를 먼저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으나..

오뒷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에서 목마를 고안해 승리를 이끈 오뒷세우스가 전쟁이 끝난 후 귀향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가기 까지 10년 동안 바다에서 온갖 고초를 겪게 되며, 변사또의 수청을 거부하여 옥에 갇힌 춘향이를 구하듯 본인이 없는 왕궁에서 그의 아내(페넬로페)에게 구혼을 하며 살림을 거덜내고 있는
구혼자들을 처단한다. 페넬로페는 서양에서는 우리의 춘향이와 같이 열녀의 대명사로 지칭되고 있다고 하는데
구혼자들의 온갖 구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아버지 수의를 다 짤때까지는 재혼하지 않겠다며 책략가의 아내 답게,
수의를 낮에는 짜고 밤에는 풀기를 반복하며 3년을 보내지만 이마저도 하녀한테 걸려 그저 방안에서 수절하며 남편을 기다리기만 한다. 그러길 20여년...거지 행세 차림을 하고 본인 집에 돌아와 구혼자들로부터 온갖 수모를 당하여 때를 기다리다 그들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낸 남편을 보고서도 바로 달려가 기뻐하지 못하고 진짜 이 남자 내 남편인지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상한 여인이여! 올륌포스에 사시는 분들께서는 분명
모든 여성들보다도 그대에게 더 무뚝뚝한 마음을 주셨구려.
천신만고 끝에 이십년 만에 고향 땅에 돌아온 남편에게서
이렇듯 굳건한 마음으로 멀찌감치 서 있는 여인은 정말이지
이 세상에 누구도 달리 없을 것이오. 자, 아주머니!
나를 위해 침상을 펴 주시오. 내가 혼자서라도 잠들게 말이오.
저 여인의 가슴속에는 무쇠 같은 마음이 들어 있으니까요."

 사려 깊은 페넬로페가 그에게 대답했다.

"이상한 분이여! 나는 잘난체하지도 않고 업신여기지도 않으며
크게 놀라지도 않아요. 노가 긴 배를 타고 그대가 이타케를
떠나실 때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똑똑히 알고 있으니까요.
에우뤼클레이아! 그이가 손수 지으신 우리의 훌륭한
신방밖으로 튼튼한 침상을 내다놓으시오.
그대들은 튼튼한 침상을 내다 놓고 그 위에다
모피와 외투와 번쩍이는 담요 같은 침구들을 펴드리세요."



구혼자들을 죽이기 전, 아내를 시험해 본 오뒷세우스나 페넬로페나 두 부부 똑같다.
이 오뒷세우스 본인 아버지를 찾아가서도 다시 한번 시험해 보니.. 대단한 사람이다.
20여년간의 세월이 그를 그리 만든 것인지, 난 끊임없이 의심을 해야 하는(상황이 그를 그리 만들었다 하지만)
오뒷세우스가 가엾기도 하였다.


김경욱의 단편소설 '공중관람차를 타는 여자'를 보면 주인공 '수진'이 미팅 장소에 나온 남자에게는 꼭 오뒷세이아에 대해 질문하고 독창적인 해석을 듣길 원하는 데, 그 중 한 남자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페넬로페는 왜 화살로 도끼자루의 고리를 관통하는 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까?

이 시험에는 다분히 성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어. 화살은 남성의 심벌이고 도끼자루의 고리는 여성의 심벌이지. 그러니 화살이 도끼자루의 고리를 꿰뚫는 것은 남녀의 합일을 뜻하겠지.
도끼자루는 왜 열 두개나 필요했죠?
페넬로페는 이십 년도 거뜬히 기다렸어. 애당초 구혼자들을 내치기 위한 시합이었던 거야.
설마 열두 자루나 꿰뚫는 자가 있을라고.두세 자루도 아니고 열두 자루나 꿰뚫는 녀석인걸.


이 소설을 먼저 읽고, 오뒷세우스를 접해서인지 읽는 동안 이 문장들이 떠올랐다.
나보고 해석을 하라고 하면, 글쎄 난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으려나.


오뒷세이아를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이야기가 너무나도 익숙하단 것이었고, 그것은 그만큼 변주되어 많은 작품속에서
유사하게 표현이 되었다는 것일텐데. 내가 너무도 늦게 이렇게 오래된 이야기를 접하게 된 것이구나.. 였다.


원전으로 번역한 천병희 번역가에 의하면

일리아스에는 분노의 모티프 하나밖에 없는 데 비해 오뒷세이아의 모티프는 여러 가지며 그 중에서도 특히 두 가지가 두드러진다. 그중 하나는 귀향자 모티프다. 어떤 사내가 젊어서 고향을 떠나 오랫동안 객지에서 떠돌다가 천신만고 끝에 고향에 돌아와서 아내의 구혼자들을 죽이고 다시 옛 권리를 회복한다는 모티프가 그것이다. 다음은 선원 모티프로, 어떤 선원이 바다 위를 항해하던 중 풍랑을 만나 죽을 뻔하다가 구사일생으로 혼자 살아남아 온갖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모티프는 해양민족에게서 흔히 경험할 만한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모든 이야기들의 뿌리에는 고전이 든든히 받쳐주고 있는 것일테다. 
기원전 7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이런 모티프를 가진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관련없지만 사족.

오뒷세이아에서의 복수는 처절하지만 멋있고, 은근히 기다려지는데
한국 드라마 작가들도, 이렇게 복수하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주었음 좋겠다.
너무 즉각적이고 극단적이기만 하잖아. '아내의 유혹'의 가장 큰 매력이 바로 그 스피디함이라긴 했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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