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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질병계의 부르조아

by 와락 2012.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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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각달각

동그란 배 위에서 사원증과 목걸이가 서로 부딪히며 소리를 낸다.

둘째를 낳은지 만 8개월이 넘었지만, 태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복부의 지방들

세상 무서운줄 모르고, 나를 닮아 뻔뻔함만 익혔나보다.


종합검진결과가 나왔다.



헤모글로빈 감소, 약간 빈혈소견, 2~3개월 추적관찰요망

역류성식도염, 알카라인 위염, 만성위축성 위염

인유두종 바이러스 검사 양성, 산부인과 전문의 진료요망

심전도 동성부정맥 추적관찰 요망

요추골 골감소증 T value -1.3, 대퇴골 골감소증 T value -1.1 운동,식이요법, 필요시 약물치료 



우리 엄마에 비하면

나는야 질병계의 부르조아지만,

두 아이를 낳고 급속히 허약해진 나의 뼈와 2년간 배려심 없는 주인 덕에 면역력이 바닥을 친

나의 슬픈 자궁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속상했다.

남편은 지난 건강검진 결과 골밀도가 지나치게 높아 담당의로부터 대체 무슨 운동을 하냐는

질문을 받았다며 어깨를 으쓱하던데.   



기억력이 점점 줄어들고, 대화의 80%이상을 지시대명사로만 이야기하고

이런 현상이 출산 후 산모들이 대체로 겪는 '징후'따위로 여기며 아무렇지 않게 

'출산후치매'라니깐요. 라고 너스레를 떨곤 했었는데.

노화를. 이렇게 조금씩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뇌도 덩달아 조금씩 비어져가고 있다는 것을

남들보다 아주 조금 일찍 깨닫고 있다.

그래서 슬프다.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는 회식 장소에서도 

나는 이미 여자팀원이기에 앞서, 제 3의 성, 아줌마로 굳건히 포지셔닝 되어 있다.

질문 역시도 육아와 관련된 내용. 이마에 써서 다니고 싶을 정도로 몇 개 한정 되어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줌마가 아니라 내가 미혼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나한테 큰 관심 없었을 것이다. 마치 내가 미혼이면 아니었을것이란 환상, 판타지 자체가 문제인듯. 후후

그저 내 친구들이 미혼이기 때문에, 나를 그 동등한 선위에서 비교하려고 했으니.



어제 김자와 이런 저런 이야길 나누다가

애를 둘 낳고 얻은게 이 따위 질병들이라며 한탄하니

'근데, 만약 애도 없는데 그러면 더 슬프잖아 ㅋㅋ' 라며 스마트하게 위로해줬다.



하지만, 

이렇게 또 시경,시성이와 그 밖의 것들을 저울 위에 올려놓고

'아이들을 얻었으니 그럼 나는 괜찮아' 하고 

착한 엄마 코스프레를 하려고 한다.



이것은 명백히 자기 기만.  이제는 Nope.


수고한 자궁과 허리와 골반의 뼈들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그들을 위해 칼슘보충제와 영양제를 섭취하자.

내가 더욱 건강하고, 즐거워야, 결국 가정에도 충실할 수 있으니

보고서에 매번 그럴싸하게 사용하는 '선순환' 이란 용어는

무엇보다 내 가정, 나에게 가장 필요한 단어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