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인생을 수월하게 살기 위해 지키려는 것이 있다면 친절과 무관심이었다.
친절은 평판을 좋게 하고 일을 수월하게 성사시켰다. 무관심은 인생을 한가하고 태평하게 만들었다.
그는 대체로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굴었고 자주 근황을 물었고 그것을 기억했으며 시종 정중함을 유지했다.
사람들의 속내에 무관심해서 가능했다.
- 밤이 지나간다. 편혜영 -
올해 나의 모토는 Be Kind다.
정여사가 이직하면서 나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기도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강점을 더 살리는게 좋지 않을까 싶지만,
어차피 평가는 상대적인 것이고, 10가지 장점보다 1가지(어디 하나 뿐이랴) 단점에 대한
이야기에 더 신경이 쓰이는게 사실이니까.
친했던 정여사가 떠나는데도
나는 환송회도 참석하지 못하고 제주에서 서류더미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눈이 빠지게 서류를 읽다가 시계바늘이 8시를 가리키자 정신없이 주차장으로 내달려
숨을 고르고 그녀에게 전화를 했으나, 고요한 제주와 다르게 소란스러운 술자리
누군가는 고함을 지르고, 크게 웃고, 떠드는 현장.
적당한 의무감으로 그리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참석하는 마지막 자리에 나는 없었다.
우리의 대화는 매번 같은 패턴인데, 여전히 그녀는 나의 업무방식에 대해 지적했고
나는 고자질하는 초딩처럼 깨알같이 알리고, 그녀에게 위로 받고 그렇게 인사를 나눴다.
그녀가 떠났으므로
일주정도 그만둘 수 밖에 없다.
일주정대신
가증스러운 위선일지라도
나는 '친절'하게 굴어야 하고
사람들의 근황에 대해서도 궁금해 해야 하고
속내에 대해서는 더욱 더 무관심 해야 한다.
평판을 좋게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제는 일 주정을 부릴 수 없으니
마치 알코올중독자가 재활센터에서 치유를 위한 활동을 하듯
노력해 보는 것이다.
잘 될 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년에 '제가 시도는 해 보았습니다만' 이라고
이야기는 해볼수 있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