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정형외과에서 처방받은 근육이완제+진통,소염제 를 복용한 후로
부글거리는 속을 다스리지 못해 꽤 힘들었는데, 결국 월요일 오전에 반차를 내고 말았다.
병원에 가니 장염이라고(가족들은 모두 멀쩡한터라, 나만 장염인게 의심스럽기도 하고,아무래도 약 부작용 같은데-)
일주일 분의 약을 받아왔고, 엄숙한 표정의 내과 선생님이 내리신 처방대로(유동식만 먹으라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흰죽만 계속 먹고 있는 중이다. 오늘도 어쩔 수 없이 금쪽같은 휴가를 신청하고. 아흑.
평일 휴가는
꼬옥 바닷가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허세 사진을 찍고,
어느 책에서 봤던 꽤 그럴 듯한 시구를 140자안에 꾸역꾸역 맞춰 트윗에서 잉여질을 하다
못다 읽은 책을 주씨들의 방해 없이 읽고,
주씨들과는 가지 못했던 레스토랑에서 혼자 밥도 먹고,
도서관에서 10분내에 책을 골라오라는 남편님의 쪼임 없이 책도 무작정 골라보려 했지만
애들 소아과에 갔다가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와 죽 먹고, 독서통신 시험보고, 사이사이 신호가 오면 화장실도 가고
안방에 물 때 낀 욕실 청소도 하고, 전기장판을 꺼내어 30분간, 중 정도의 온도에 맞춰두고는
그 위에 앉아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첫 페이지를 읽자 마자 까무룩 잠이 들어-
아까운 오후가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어떡합니까. 지나가버린 내 귀한 시간.
2014년 06월 17일 오후 2시 반에서 3시 50분 사이.
약의 부작용 때문이라 믿고 싶지만
나는 예전처럼 신기하게도 마음이 불편하고 아프면 몸도 따라 고장났던 사람이라- 엄살이 아니고 진짜.
지난 주 업적평가를 하는 중 '루틴한 업무 아닙니까'라는 상사의 지나가는 멘트가
내 위와 장에 그대로 그대로 내리 꽂힌건 아닌가.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몸과 마음이 평온하지 않다.
공정하고 신속하고 매끄럽게 일처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한 순간에 루틴한 녀자인간.
애 때문에 남들보다 출/퇴근 시간이 늦고/빠른
주위를 둘러보면 애 둘 녀자인간은 나 밖에 없으므로
누군가에게 호소할 수도 없다. 그저 이렇게 끼적일 뿐.
하지만
내 자신에게 떳떳하니, 전혀 아쉬울 것이 없다.
지금 하는 일 덕분에 머무를 수 있는 제주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읽어야 할, 내가 도피할 수 있는 소설 속의 세계, 그 곳에서 혼자 만나는 멋진 친구들.
뇌가 섹시한 남자, 이동진님이 전해주는 빨책의 좋은 책들을 위로 삼아-
지내다 보면 위와 장도 무뎌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