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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함께

상실의 주제

by 와락 2014. 7. 28.

문제 삼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문제 삼으니까 문제가 된다. 

                                                           <정글만리 / 조정래> 



예민하게 문제 삼는거 아니냐고 

그 나이 애들이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덮어 둘 수도 있지만 

시경이의 마음을 엄마인 내가 제대로 '읽고 있는게 맞는지' 확인을 하고 싶어 

('엄마냄새' 책에서도 상담하는 것을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아이 상태를 '진단'하는 수준이라고 

가볍게 마음을 먹으라는 조언도 내 편한대로 해석한 참이라) 

폭풍검색을 통해 제주에 유명하다는 아동심리상담센터에 연락하여 어렵게 주말 예약을 잡았다. 



한 회에 네 식구 외식비 수준의 상담비가 부담스럽기도 했고

시간대도 애매하여(토요일 오후 3시) 가기 전까지 

좀 더 지켜봐도 되지 않을까. 라고 계속 갈등을 했으나.

일단 가 보기로 결심하고 센터를 찾아갔다. 



여러 육아 관련 프로그램을 봐와서인지

센터에서 이루어진 조사활동(설문지 응답 및 가족 심리 확인을 위한 그림그리기)이 낯설지는 않았다. 

다만, 하얀 도화지에 내 원하는 대로 그림을 그리라고 하니 무척 막연하다는 생각이 들고

백퍼센트는 아니더라도 나의 무의식을 반영한다는 그림이 황량하고 적막하여 어색할 뿐. 

가장 먼저 그린게 둥근 울타리였는데, 어쩌면 나는 계속 울타리 속에 갇혀 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편의 그림은 그의 대쪽같은 성미를 그대로 보여주듯 온통 직각이었다. 그의 삭막한 정신세계가 드러났는데

나무조차 그루가 아니라(본인은 직업병이라 했으나, 설계도면 그릴때 나무를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곧게 뻗은 대나무처럼 그려 놓은 것을 보고

상담센터 선생님조차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갸웃(일반적인 그림이 아니라며)

주시경의 그림은 다섯 살 아이치고는 여러 요소들을 잘 구성했다고 하나,

집을  조그맣고 어둡게 음영처리를 하여 집에 대해서 우리 시경이가 갖는 느낌 그대로 전해져와 

마음 한 구석이 서걱거리고.





스윗홈

남편과 내가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야 할 공간인데

우리는 서로 다른 집에서 살고 있었다. 

나는 울타리가 쳐 있고, 남편은 교회 첨탑처럼 높은 꼭대기가 있는 직각의 그 집에,

시경이는 쓰러져가는 듯한 어두운 좁은 집에 있었던 것이다. 



상담센터장님의 말을 빌리면

시경이의 문제는 아니다. 아이는 발달 시기에 맞는 과정을 일부 보여주고 있을 뿐이고

어릴 때 부렸어야 하는 어리광을 동생 때문에 못하고 있다가 이제서야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엄마가 받아줘야 한다. 

시경이도 시경이지만, 남편의 그림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선생님은

아이와 아빠가 '상실의 주제'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고 한다. 

아이를 위해서는 가능하면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엄마가 집에서 육아를 하는 것이 좋겠다. 라고 하셨다.

(본인 딸도 자신의 권유로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다며-.-



상담의 긍정적인 부분은 

첫째, 내가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장모도, 처제도 아닌 제 3자 전문가를 통해 남편이 들었다는 것

(그 전까지는 나의 불만을 한귀로 흘려버리는 대담함을 보여주고, 혹은 그래서 내가 어쩌라는 무신경함의 극치를 

보여줬으나 상담 후 최소한 듣고 있다는 시늉, 노력하는 대견한 모습을 보여줌) 


둘째, 나 역시 시어머니 돌아가신 이후로 남편이 깊은 상실감에 빠져 사실 아직도 그 속을 헤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 

주말에는 아내 역할을 해야 하는 나보다 얼마나 더 피곤한가. 라고 매번 되묻고 싶었으나 

그 옹졸한 마음을 조금 다스리게 됨)


셋째, 무엇보다 우리 부부의 불안요소가 높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런 불안감이 나는 '방어적'으로  남편은 '완전한 무관심'으로 대체되어 

아이에게 그대로 전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부부의 싸움 횟수를 물으며, 제대로 얼굴을 맞대고 싸운 적이 없다고 하니

지금은 겉으론 아무 문제 없지만 나중에 갈등상황이 벌어지면 회복되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주말 부부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이 부분은 일단 올해 말까지는 고민하고 차근차근 풀어보기로 남편과 일차 합의.



상담에 대해 아주 큰 기대를 한 건 아니라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거나 머릿속이 정리되거나 그러진 않았다. 

오히려 풀어야 할 숙제들이 더 많아진 듯한 기분이 들기도. 


마지막으로 우리부부에게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너그러워지고, 느슨해지라'고 이야기 하시며 

상담비용도 깎아주시던 선생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놀아줘야 하는게 아니고

아이와 같이 놀아야 하는 것

남편은 육아동반자이지만, 동시에 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것을

종종 잊고 산다.




상담을 끝내고 나서

지난 주에는 하루 휴가를 내어 아이와 둘만의 데이트 시간도 갖고

장염에 걸린 동생이 어린이집에 못가게 되자 본인도 안가겠다고 몽니를 부리는 큰 아이를

(예전 같으면 억지로라도 어린이집에 보냈을텐데) 그대로 놀게 했다.

덕분에 친정어머니만 힘들게 되셨다. 



육아처럼 인내심을 시험 받는 일이 또 있을까.

회사일은 그나마 뒷담화를 같이 해 줄 동료라도 있고

힘든 프로젝트나 누구라도 쉽지 않은 상사가 있는 경우라면 

최소한의 동정을 받거나, 술이라도 한 잔 얻어 먹을 수 있을 텐데.



이런 내가 감히 아이를 키운다니. 

서천석 선생님의 책 제목대로, 낯 간지럽지만 아이와 함께 조금씩 자라고 있다면 다행일 정도랄까.




엄마를 기다렸다 가장 먼저 간 곳이 놀이터. 소박한 내 딸.




어디 가고 싶니? 물었을 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키즈팡팡'을 이야기 한.

동영상 보면서 계속 점프점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