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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이탈리아, 엄마를 부탁해

by 와락 2015.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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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 휴가 이틀 째이다.

열흘 간 이탈리아로 성지 순례를 가신 어머니를 대신 해

집에서 전업맘 코스프레 중이다.

 

엄마와의 대화는

은유와 함축으로 이루어진 시와도 같아서

상징의 의미를 잘 유추해야 한다. 행간도 꼼꼼히 읽어야 한다.

가끔은 오역이 섞인 어려운 번역서 같기도 한데,

내가 읽은게 참뜻인지 가끔 동생을 주석처럼 활용해 크로스체크를 하기도 한다.

 

어머니가 원하는 여행을 보내드리기까지 쉽지 않았다.

 

로마 베드로 대성당과 아씨씨를 봐야 하고

크루즈는 싫고, 평화방송 투어가 아닌 다른 곳은 신뢰가 가지 않으며

추위를 잘 타시니 여름 초입이 좋고, 한 여름은 체력이 약한 엄마가 힘들 테니 패스.

지난 해 부터 수시로 평화 방송 홈페이지에 들어가 여행 상품을 확인하며  

결국 올해 가시게 된 상품을 선택하고, "그 정도면 머...'"의 답을 얻기까지. 휴-

(해석 : 이런 저런 이유로 아쉬운 점은 없지 않지만, 어느 정도 만족 한다는 의미)

 

 

평화방송에서 간간히 뵙는 신부님과의 동행이라  떠나기 며칠 전부터

설레여 하시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로마 도착 메시지 이후로 답이 없으신 걸 보면

잘 지내시는 것 같기도 하고.

 

 

가족의 발견이란 책을 회사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으며

지난 한 달여간 나를 붙잡고 있던 불안감과 가오나시 처럼 내 등뒤에 꼭 달라 붙어 있는

스산한 어둠의 기운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곰곰 생각해 보았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가슴아픈 일이라 외면했던

일부러 기억 저 편에 꽁꽁 숨겨 둔 일들.

스스로를 수치스럽게 생각했던 나날들.

 

쉬지 않고 잔물결처럼 일렁이는 나의 불안을

아이가 스펀지 처럼 다 흡수했을 거라 생각하니 미안하다.

 

 

안식 휴가 내기 전까지

이런 저런 스트레스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는데

에잇. 모르겠다 라는 심정으로 휴가 신청서를 올리자

거짓말처럼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지난 금요일에는 좀 껄끄러웠던 사람과도 홍홍 거리며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그래 뭐 있나.

맛있는 거 먹고, 애기들이랑 신나게 놀고

평일 도서관에도 가보고, 서점 가서 신간도 읽고, 조조영화도 한 편 보고

자전거 타고 탄천도 달리고.

 

이러다 보면 다시 출근해야 할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