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졸업논문 심사가 있었던 지난 주말
장염에 걸린 경과 곧 장염에 걸릴 징조를 보이는 둘째를 홀로 돌본 만 48시간의 대장정이 끝났다.
휴. 정말이지, 하얗게 불태웠어. 인내심을.
"밥 먹어"
"엄마 내가 지금 책 보고 있잖아."
"밥 먹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엄마!. 내가 지금 책 보고 있따고 말했 찌. 지끔 숲속의 오로라 공주 읽고 있다고 했찌!"
"셋 까지 세서 안오면 버린다."
"악~~~~~~!."
"너 이리와"
이런 대화 패턴은 식사시간 외에, 씻을 때, 옷입을 때 일상생활 모든 곳에서 반복되는데.
나중에는 꼼지락 거리는 모습만 봐도 속이 부글거린다.
영락없이 나의 미니미인데, 정말 미추어버릴 것 같다.
그러다가도, 내가 슬퍼하는 표정이거나, 미안해하며 자책하면
다 알고 있다는 듯 어른같은 표정을 지으며 "엄마, 괜찮아. 이해해."
그 작고 오통통한 손으로 내 볼을 어루만지며 달래주기까지.
어이가 없어 웃으면 오른쪽 눈을 살짝 찡긋거리고 평소에는 쉽게 보기 힘든 보조개를 보일락말락.
일요일 오후
제주에서 가장 익숙하게 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인 회사로
답답해 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데려갔다.
시작은 거창했지만, 결과는 미비한 나의 텃밭을 보여주고, 물도 같이 뿌리고
상추를 뜯으랬더니, 아예 뽑아버리는 대참사.
사과쥬스를 홀짝이며 옆에 온 6살짜리 오빠들을 연신 힐끗거리고,
'도도함'은 꼭 아빠로부터 유전되기를 진심으로 빌었건만.
집에 있으면 잘 모르지만,
또래보다 크지 않다는 사실은 밖에 나가면 확실히 알게 된다.
다행히 머리 크기도 그들보다는 작다는게 첫번째 위안, 또래 평균보다 많이 작은 엄마보다야
조금은 나은 것 같아 두번째 위안.
둘째는 아직도 이마 양쪽에 머리숱이 부족하여 진정한 '동안외모'를 지녔는데,
오늘은 본인보다 한달 먼저 태어난 친구가 내두른 손에 얼굴을 맞고는 크게 놀라 그 아이만 지나가도 내 뒤로 숨어 집에서 언니를 물어제끼는 그 맹랑함은 어디로 내다버린것인지 진심으로 묻고 싶었다.
살인진드기 걱정 때문에
돌아오자 마자 끝도 없는 실랑이를 벌이며 씻기고 나니,
미역국이 먹고 싶단다.
불린 미역에 대충 멸치액젓을 넣고 바글바글 끓이다 바지락조개 몇개 넣고는
한소끔 더 끓여서 주니 맛이 없다며. 그래 나도 알아.
경이 말하는 미역국은 시어머니가 사태를 사다가 하루 종일 뭉근하게 끓인 그것을 말하는 것인데,
투정하며 미역국을 떠먹는 아이를 보다가 울컥했다.
이제, 어머니의 소고기미역국 조리법을 물어볼 수가 없다.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히 살아가려 애써보지만 결정적으로 일상의 가장 필요한 순간에
어머니가 계시지 않다는 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이렇게 또 느낀다.
평정심이 극에 달해,
지금쯤 남편은 일욜 오후 예능 프로를 보면서 한가로이 있을 거란 망상에 -너무나 괘씸하여-
연락하니 어머니가 안계신 집에서 계속 어머니를 생각하며 아버지와 보내는 그의 주말이
쓸쓸하고 힘들어 그저 알았다 외에는 아무말도 할 수 가 없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아무것도 손에서 놓지 않고 -일도 제주도라는 생활 터전도, 아이도-
힘들다고 투정을 부린다며 욕심쟁이라고 표현했고(실제 그는 슈퍼맘이라 했지만, 나는 슈퍼맘이라는 단어 자체가 조롱하듯 들린다) 실용적인 사고의 남편은, 지금은 좀 힘들지만 나만 잘 버텨내면 내년에 생기는 좋은 환경의 어린이집에 아이들도 보내고, 안락한 제주 생활을 할 수 있지 않겠냐고, 반정도 수긍이 되는 이야길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비정상적인 가족 형태를 언제까지 계속할 것이냐며 나에게 수치심 덫을 놓기도 하고.
아직은 섣불리 판단을 할 수 없다.
무조건, 제주만 보고 얼씨구나 내려온 내가
지난 4개월 간 겪은 일을 생각해 보면, 나 아닌 다른 누군가도 쉽게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상황이 그저 쉬이 지나가기를 조금은 팔장끼고 지켜봐도 될 것이다.
내 탓이 아니니, 적당히 자책하고, 실용적인 남편의 아내 역할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배우 박신양이 러시아 유학시절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질문의 대답대신 러시아 시집-라고 한다.
저 문장이 지금 내게 묻고 있는 것 같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상추 위에 있던 벌레와 대화하고 있던 아이, 거기서 어서 나오라고 다그치는 중
그저 막 찍었다고 표현 할 수 밖에, 왜 이런 구도가 나왔는지 묻지 말자. 그냥 찍었을 뿐.
이런 사진으로는 당당히 DSLR을 산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