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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시대

결혼 9주년

by 와락 2017.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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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9주년

2월 한 달 경의 졸업과 입학 준비. 신규 상품 오픈과 프로모션등으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서 대망의 기념일이 다가오는데도 숙소 예약도 제대로 못했다.

숙소 예약을 내가 하기로 했기 때문에 '나만 믿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이러기냐'라는 남편의 질타가 있었지만

9년을 살아놓고도 늘 그런 기대와 희망을 잃지 않는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나의 허술함을 언제나 송곳같이 지적하지만 그래도 전에 비해 많이 무뎌졌기 때문에 고맙다.




급하게 남편이 알아본 곳은 광화문의 프레이저 플레이스

서울 1박 2일 도심여행 컨셉으로 아이들과 광화문 교보문고에도 가고

숙소에 있는 풀에서 수영도 하고 다음 날 아침 조식을 먹고 할아버지댁에 들렸다 집에 오기로.





주자매와 동행하지 않았더라면

여유롭게 사우나를 하고 신작 영화를 보면서 

각자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충전한 후 저녁 즈음 술 한잔 기울이며

동지애를 다졌을텐데.



사랑스런 주자매와 함께였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은 그저 사치.

그래도 결혼 4주년 아이들 데리고 그랜드힐튼 갔을 때를 떠올려 보라!

적어도 지금은 4인 테이블에 앉아 자기 몫의 음식은 스스로 먹으니까.

주스를 두어 번 엎지르고 옆 테이블 사람들을 궁금해 하고

제 자리에 앉아 있기 힘들어하는 호기심 대마왕 시성이를 계속 주시하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밥은 먹을 수 있으니







숙소에 짐을 풀고 광화문쪽으로 올라가는 중 

미디어에서 보았던 태극기집회를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니 숨이 막혔다.

해병대 모자를 쓰고 권총을 두른 채 군가를  부르거나 

지방에서 관광온 차림새로 한꺼번에 내려 탄핵 반대 구호를 외치고 태극기를 흔들며 

광장으로 집결하는 저 노인들의 분노는 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이 울려퍼지는 혼돈의 서울 시청을 지나서

아이들과 광화문에 가서 세월호 분향소 앞에서 묵념하고 건네주시는 풍선을 받아 온 후 다시 숙소로 되돌아 왔다.

서울 시청을 직접 다시 지날 용기가 없어 덕수 초등학교쪽으로 해서 뒤로 돌아오는데

나이 지긋한 점잖아 보이는 어르신 두 분이 정동교회 앞쪽을 지나시면서 맞아. 옛날에 여기가 이랬었지 라며. 

두런두런 이야길 나누신다. 주자매를 보면서 부드럽게 미소도 지으시고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지나치는 데 뒤를 돌아보니 뒷짐 지신 두 분의 손에 태극기가 있었다. 






오후에 아이들과 수영을 하고 가벼운 저녁을 먹은 후 숙소에 있는데  

태극기집회 인원들이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쪽으로 행렬하고 있었다. 

여러 차례 촛불 집회에 참여한 친정 어머니는 광화문 어디가에 있으실텐데

9주년을 기념하려고 온 숙소에서 

창 밖에는 태극기를 몸에 감싸고 흔들며 행진 중이며 

뉴스를 통해 광화문의 일렁이는 촛불을 보고 있노라니(어딘가에 있을 엄마 포함) 마음이 어지러웠다. 








결혼 9주년

해마다 굵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남편과 나는 서로를 의지하며 작은 보트에 몸을 싣고 떠 밀려가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점차 결혼식보다는 장례식에 참석해야 하는 일들이 잦아지고 있고 

학부모가 되었으며 남편은 상무님 아이들이 서울대를 가기 위해 수학을 선행했다는 이야길 들려주곤 한다.

아이가 원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하지만

그래도 학교에서 공부도 잘했으면 하는 욕심을 감추지 못하다가 

그저 아이가 몸도 마음도 건강한게 최고야 라고 스스로를 다스리며 

학부모와 부모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 노력 중이다. 




9주년을 보내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좀 더 이기적인 사람들이었을 거라는 것이다.

힘든 시간도 있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감사하자. 

덕분에 우리도 인간으로서 매년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것일테니  




아이가 '왜 할아버지들이 태극기를 흔들죠?' 라고 물었는데 

시원하게 답을 해 주지 못했다. 

아이는 질문을 해 놓고도 금방 잊고 신나게 뛰어다녔지만

나는 오래도록 그 질문에 말문이 막힌 나를 기억할 것 같다. 









프레이저 플레이스 뒷편에 있는 이화 고려장. 

날이 추워 근처에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해서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맛집.

국수전골. 으슬으슬한 날되면 생각날 듯. 




노란 풍선 받아 들고 숙소로 이동 중인 시성.




점프 점프. 지금이야.





그래도 9주년 축하니까 와인은 한 잔 합시다.




다음 날 아침 먹고 르느와르 전시회에 가서 설정샷 




와인 두 잔에 취해 발그레진 얼굴로 시경이와 셀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