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양한테 서재페 티켓이 생겼다며 연락이 왔다.
1분기에 한 번은 만날 법도 한데 다들 사는데 바빠 연락이 뜸하던 중 회사에서 보너스 대신 공연 티켓을 받았다며 친구들과 그 (슬픔 대신) 기쁨을 나누겠다고 한다.
서재페는 이야기만 들어봤고 가 본 적은 없는데 가기 전까지는 또 별 생각이 없다가 가기 전날 준비물 리스트를 보며 뒤늦게 챙기게 되었다.
올림픽공원 잔디밭(야외광장)과 체육관 일부에서 공연을 하는 것 같은데 주요 무대는 야외광장이므로 한 낮의 태양으로부터 가속화 되는 피부의 노화를 방지해 줄 양산과 썬크림, 돗자리와 여분의 간식. 그 외 등등을 챙겼다.
늘 그렇듯 가기 전까지 별 기대감이 없다가 모임 전날에는 리스트를 챙기고 당일 아침에 마음이 분주해지면서 초조해진다. 효율적으로 놀다(?)오지 않으면 불편할 것 같은데, 애당초 그 마음은 버렸다.
주자매는 본인들도 가고 싶다며 라우브 가수 공연도 볼 수 있냐고 물어보는데, 정작 그 가수가 누구인지 몰랐다. 작년에 같이 본 애니메이션 주제곡을 불렀다고 유창하게 팝송을 부르는 시봉이를 보니 언제 이렇게 컸나.
오양 정지와의 모임은 주자매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모임이고, 아이들이 태어나서도 지속되었던 만남인데…엄마의 친구 모임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현한 것은, 자세히 말하자면 모임보다는 ‘공연’ 이겠지만 처음이다. 어쨌거나 잔나비 공연을 보고 오라는 둥 조언이 있었지만 그저 편안히 좋은 음악이나 듣고 친구들이나 만나고 오고 싶었다.
오전에 친정 어머니가 만드신 부추부침개와 파프리카, 수박을 통에 담아 보냉백에 담아두고 가는 길에 읽을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 2권’도 가방에 넣어 두었다. 바람을 핀 테드를 이해할 수 없고 엘라는 어찌 되는 것인지, 케이시와 은우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2권을 챙겨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공연장 도착.
지하철역에서부터 1.5km 남짓. 무거운 짐을 들고 공연장까지 가려니 힘이 부쳤다. 게다가 날도 덥고.
매번 모임마다 내가 1등으로 도착하는데, 오양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공연장은 처음이고,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와서 줄을 서서 표를 받는 줄도 몰랐는데 새삼 놀랍고 오양 덕분에 줄도 서지 않고 프리패스가 가능해서 감사했다.
흥겨운 선율이 공연장을 메우고 있고. 삼삼오오 사람들이 연인과 지인과 함께 와서 돗자리를 피고 잔디밭에 모여 앉아 있다. 다들 산뜻한 미소를 띄고 있다. ‘즐기러 왔어요. 준비 되었나요?’
대체 몇 시 부터 왔는지, 일찌감치 와서 나무 그늘 밑에 미리 자리를 잡은 선수들도 있었다. 진심으로 리스펙. 배운 사람들이었다.
그늘은 어렵지만 잔디밭이라도 어떠랴
우리에겐 양산이 있으므로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좀 덥긴 했지만 흥겨운 재즈 음악에 텐션이 오른다. 오양은 오늘의 모임을 위해 어제 ‘연차’까지 냈다고 한다. 직장인에서 피 같은 소중한 연차를 오늘의 컨디션을 위해 미리 내다니 엄청난 희생이 아닐 수 없다.
친구들은 기뻐하며 맥주를 사러 나갔다. 운동 때문에 금주를 선언했으나 레몬맥주는 맥주라고 할 수도 없고 모임을 위해 한 잔 정도는 먹어도 되지 않을까. 기꺼이 들이켰다. 시원했다.
공연장에 온 게 얼마만인가.
광장을 가득 채운 사운드에 몸을 맡기고 허리는 오양이 준비한 등받이 의자에 의지했다. 각자 싸온 음식들을 펼쳐 놓고 먹으면서 맥주도 한 모금. 행복하군요.
한 낮의 태양이 부담스러웠는데
야외광장 공연이 일부 끝나자 ‘비비’를 보러 다른 공연장으로 이동했다. 비비의 노래 중에는 ‘밤양갱’만 알고 있었지만 다크한 아이유라고 했던가. 경상도 사투리가 남아 있는 말투와 전혀 다른 음색이며 천상 연예인 같은 무대에서의 퍼포먼스를 보면서 흥겨웠다.
다시 야외광장으로 돌아와 부드러운 음색의 재즈가수 공연도 듣고 맥주를 한 잔씩 더 들이키며 공연을 즐겼다. 중간 중간 엔터 산업에서 바라보는 민희진 사태와 오양의 개인적 의견에 대해 물어보기고 하고. 정지의 아들과 인도네시아 한 달 살기도 들었다. 공연에 집중하느라 각자의 상반기 일상을 세세하게 나누지 못했지만 그래도 중요한 건 서로 이야기 한 듯.
그러나 친구들은 등산이나 달리기를 하자는 나의 회유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정지는 갑자기 나는 달릴 수가 없어! 라며 만난지 20년도 넘은 지금 고백을 한다. (뭐 그 전에는 달릴 일이 거의 없기도 했지만) 그럼 산은 어때. 등산을 가 보는 건 어떨까. 우리 친구들은 나의 물음에는 무응답으로 응했다. 갑자기 오양은 공연장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손뼉을 치기 시작하고 정지는 말 없이 텀블러에 담긴 보리차 처럼 생긴 와인을 홀짝인다.
중간 쉬는 타임에는 한 번 더 외국 가수의 공연도 보고 왔다. 정말 가수를 너무 몰라서 아쉽고,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내 인생이 너무 단조롭달까.
집에 돌아와 경선생한테 이야기 하니
아몬드 같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팔짱을 낀 채로 비스듬히 상체를 기울인 채 나를 보며 말한다.
“엄마 이제 알았어?”
나름의 루틴을 소중하게 지켜가며 잘 살고 있다.
다만, 가끔의 이벤트라도 나에게 선물해 줘야지.
친구들 덕분에 토요일의 자유함을 온 몸으로 느끼며 즐기고 온 하루였다. 초가을의 모임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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