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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쇼코의 미소

by 와락 2017. 6. 14.



쇼코의 미소/ 최은영 



담백하고 큰 기교 없는 문체, 여러 번 고심해서 썼다 지웠다 반복하다가

나오지 않는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듯 한 글이다.

단편 한 편을 읽을 때 마다 다음 장으로 바로 넘기기 어려웠다. 

슬픔에 잡힐 먹힐 까봐 제대로 애도 하지 못했던 기억들과 

눌러 놓았던 감정들이 작가가 살짝 건드리기만 했는데 둑이 무너지듯 쏟아진다. 


제일 좋았던 작품은 김영하 작가님 팟캐스트에서 들은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이다.

차 안에서 팟캐스트를 들으며 주행하다 보니 어느새 주차장. 

한 동안 그저 멍하니 앞을 바라보다 눈물을 닦고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책을 읽고 따로 서평을 쓰거나 기록하지 않았는데

요즘 시경이가 묻는다. 엄마는 무슨 책을 읽는지, 왜 제목은 그런 것인지

아이가 묻는 나의 생각. 이렇게라도 남겨 놓지 않으면 금방 또 잊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

인상 깊은 구절이라도 쓰려고 한다. 

아이를 통해 성장하는 하루 하루이다.





밑줄 그은 구절


-쇼코의 미소-


꿈, 그것은 허영심, 공명심, 인정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들을 뒤집어쓴 얼룩덜룩한 허울에 불과했다.

꼬인 혀로 영화 없이는 살 수 없어, 영화는 정말 절실해. 같은 말들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제대로 풀리지 않는 욕망의 비린내를 맡았다. 내 욕망이 그들보다 더 컸으면 컸지 결코 더 작지 않았지만 나는 마치 이 일이 절실하지 않은 것 처럼 연기했다. p 34



기다려준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림자를 먹고 자란 내 자의식은 그 친구들마저도 단죄했다. 연봉이 많은 남자와 결혼하는 친구는 볼 것도 없이 속물이었고, 직장생활에서 서서히 영혼을 잃어간다고 고백하는 친구를 이해해주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고소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의 끔찍함에 놀랐으나 그조차 오래가지 못했다. p 34





- 씬짜오, 씬짜오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 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나고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p90



-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이 단편을 읽고 나의 사촌 언니가 생각났다.

항상 웃는 얼굴이었고 집안 일을 하느라 손이 늘 텄고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사촌 언니.


 할머니는 일생 동안 인색하고 무정한 사람이었고, 그런 태도로 답답한 인생을 버텨냈다.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런 태도를 경멸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 그 무정함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상대의 고통을 같이 나눠 질 수 없다면, 상대의 삶을 일정 부분 같이 살아낼 용기도 없다면 어설픈 애정보다는 무정함을 택하는 것이 나았다. 그게 할머니의 방식이었다. p 105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그 빗장 바깥에서 서로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계를 하고 부부 동반 여행을 가고 등산을 했다. 스무 살 때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그때는 뭘 모르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하면서. p 116







-작가의 말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 길에서 나 또한 두려움 없이, 온전한 나 자신이 되었으며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