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by 와락 2017. 12. 21.

 재테크 책을 대여섯권 내리 읽었더니 실천은 커녕 자괴감만 커져 모두 반납하고 도서관의 문학 책장으로 돌아왔다. 

평온한 농가 그림과 아이들 픽업 하면서 대기 할 때 읽기 좋은 분량 300페이지 남짓이라 

민음사 세계문학81번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를 빌렸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기괴하고 찜찜하지만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괴물같은 책이었다. 


각 등장인물의 독백으로만 이루어진 소설 형식도 특이하다.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친정이 있는 곳에 묻어달라는 어머니 애디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온 가족이 떠나는 장례 여행인데 

중간에 홍수와 화재를 겪고 관이 유실될 위기를 겪는다. 


22살 이후로 일을 하면 죽는다고 생각하는 무능한 남편 앤디

어머니가 누워 있는 창 밖에서 어머니의 관을 짜는 맏아들 캐시(이후 불어난 강물에서 관을 옮기다 다리를 다치게 된다)

애디를 닮은 듯 섬세한 감수성과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인지하는 통찰력을 가졌지만 정신병원으로 옮겨지는 달

말 외에는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는 것 같지만 이후 모든 일을 처리하는  주얼

말 할 수 없는 비밀을 갖게 되고 읍내에 가서 해결해 보려 하지만 쉽지 않은 듀이 델

어머니를 물고기에 비유하는 아직 어머니의 죽음을 이해하기는 어려운 막내 바더만.




길지 않은 분량인데 한 숨에 읽기가 어려웠다. 

여러 번 다시 읽은 부분도 있고. 원서로는 더 이해하기 어려웠겠지만 미묘한 뉘앙스와 대명사의 활용 이런것들이 

번역으로 옮겨지면서 더 모호해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해설을 보니 윌리엄 포크너의 복잡하고 인위적인 언어 구조에 설명되어 있다. 

대명사의 사용이 불분명하고 전후 맥락 파악이 어렵고 메타포 해석도 어렵다고. 




소설 속 인상깊은 인물은 애디의 남편 앤디와 휘트먼 목사이다.

경제적인 부분은 고사하더라도 아이의 다리가 불구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방치해 두는 무능함과 

아내가 땅에 묻히자 마자 새 아내를 얻는 앤디를 보면 고구마를 먹는 기분이었는데 

암스티드라는 이웃의 독백에 이런 글이 있다. 

"참 이상하게도 앤스같이 못난 사람을 도울 수 밖에 없는 뭔가가 있다. 

 도와준 다음 곧바로 그를 발로 걷어차더라도 말이다."


나도 그의 이웃이었다면 그를 답답해 하면서도 결국 죽은 애디를 생각해서 

그리고 그의 다섯 남매를 생각해서 도와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해설에 의하면 비극을 희석시키는 밝은 희극적 요소 인물이라는데 정말 만나고 싶지 않은 인간이다. 



또 한 명은 휘트먼 목사이다. 

죄를 지었으면서도 애디가 죽음을 앞에 두고 그녀의 집으로 가는 길 다리가 물에 떠내려가자

밤새 죄를 고백하고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 죄를 사하시고 자기를 버리지 않았다고 굳게 믿는 그를 보면서 

입안이 썼다. 밀양의 한 장면도 떠오르고.

얼마 전 이재철 목사님 설교에서 부산의 한 여인이 길에서 5천만원을 주었는데 경찰서에 신고하지 않고 본인이 

가져서 절도죄가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왜 신고하지 않았느냐 물어보니 그 동안 착하게 살아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다며. 


남에게 피해를 주는 애디 같은 인간형보다 휘트먼 목사 같은 인간이 더 무섭고 소름끼치는데

혹 내 안에도 그런 마음이 있을까 두렵기도 하다.






#소설 속 밑줄 그은 구절



난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자이다. 사랑하는 자를 징벌하시는 하느님이시니까. 

그러나 하느님은 벌을 좀 이상하게 내리시는 것 같다. 그러나 어쨌든, 난 새 틀니를 해넣을 수가 있겠지.

그것이 그래도 위안이 된다. 정말로. p127(앤스)



"무엇을 안단 말이지요?"

"아무것도 몰라요. 그는 나의 십자가이고 동시에 나의 구원일 거예요. 

그는 나를 물과 불에서 구해낼 거예요. 비록 내가 삶을 포기할지라도 그가 나를 구할 거예요."

"그것을 어떻게 안단 말이에요.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열지도 않고 하느님을 찬양하기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내가 말했다. 그때 난 깨달았다. 그녀가 말한 '그'란 하느님을 의미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교만과 허영심 때문에 애디가 신성을 모독했음을 알게 되었다. 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애디에게 함께 무릎을 꿇어 마음속의 죄악을 떨쳐버리고, 마음을 열어 하느님의 자비에 몸을 던질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그녀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 허영과 자만에 빠져 하느님을 향한 마음을 닫고, 하느님의 자리에 이기적인 인간에 불과한 주얼을 올려놓고 있을 뿐이었다. p194(코라) 




아버지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그냥 기억났을 뿐이었다. 

우리가 살아 있는 이유는 오랫동안 죽어 있을 준비를 하기 위해서라고 말이다. p195(애디)


 

나는 용서받았음을 분명히 깨달았다. 홍수와 위험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견고한 땅을 밟으며 나의 겟세마네 동산으로 

점점 다가가고 있었다. p206 (휘트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