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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함께

아이들은 자란다 11

by 와락 2018. 3. 15.


비오는 목요일

오늘도 어김없이 경선생은 비오는 날은 특히 더 늦기 싫다고 우산을 쓰고 먼저 나가고

시봉은 '언니 잘 가' 배웅을 하며 양치를 한다. (학교 가지 않는 것 같다?!)

일학년이 된 시봉은 입학한지  2주째인데 언니와 딱 하루만 등교를 같이 하고 

나머지 날들은 엄마 속을 태우며 9시 종 치기전 아슬아슬 들어간다. 


지난 주에는 꼭 학교 가야 하냐고. 하루 쯤 쉬면 안되냐고 묻기도 하고.

어제는 반 친구를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아니 벌써?) 언제 올 수 있냐고 일정을 확인한다. 

운이 좋은지 시봉이 그토록 애정하던 어린이집 남자친구가(다른 어린이집 갈 때 얼마나 힘들어 했던지) 같은 반이 되었다. 

매일 그 친구 자리로 가서 보드게임도 같이 하고 논다며 학교 생활을 즐겁게 이야기 해 준다. 

태권도 학원 친구들과도 같은 반이 되어 언니와는 사뭇 다른 3월을 보내는 중이다. 

지난 번에는 언니가 읽는 영어책을 보더니 대단하다고 인정 인정 하며 엄지척을 했다. 

그 모습도 대견해서, 우리 시봉이는 남을 인정하는 용기가 있어. 아주 대단한데 라고 말하며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니 라고 물으니 , 마치 엄마에게만 엄청난 비밀을 알려주는 듯

속삭이며 말한다. "나는 밤마다 자기 전에 마음의 씨를 뿌려" 

그 씨를 엄마에게도 좀 나눠주면 안되냐 하니 힘들것 같다고 하며 쪼르르 방을 나간다. 




바르다 경선생은 신학기 주간 '우울하다. 마음이 답답하다' 등의 감정을 호소했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도 무섭고 힘들것이다. 떠들면 안된다. 바르게 앉아야 한다. 화장실 다녀오면 다음 수업준비 하느라

바빠서 친구들과 이야기 할 시간도 없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동생에게 이야기 했는데

동생이 전혀 선생님을 무서워하지도 않고(심지어 맨 앞 자리에서 떠들다 몇 번 지적을 받은 것 같기도 한데)

아이들과도 스스럼 없이 지내며(대부분 태권도 학원 남자 친구들), 쉬는 시간에 보드게임까지 하며 논다고 하니 

더욱 더 외롭고 혼자만의 세계에 갇힌 느낌이었는지 짜증+버럭+눈물 3종세트를 보였다.

답답한 일주일이 지날 무렵, 회장이 된 친구가 '먼저 다가와 같이 놀자'며 말을 건네기도 하고

아이들이 한 둘씩 경선생과도 대화를 하는지 제법 여자 아이들 이름을 말한다.  

지난 주 금요일 회장 친구가 집에 놀라오라며 초대 했다고 하는데(시봉 같으면 그날 친구 따라 갔을지도;)

엄마에게 물어본다고 이야기 하고서는 아직까지 답을 안했다고 한다. 우리집에도 초대하라고 하니.  

아직 그렇게 친해지지 않았는데 집에 가긴 좀 그렇지 않을까? 라고 (아 네-_-; 그럴 수도 있겠네요. )

친구 만나 노는 것도 이렇게 신중한 경선생은 

이번 주 부터는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 물 한 잔 마시고 영어책 듣기를 시작했다. 

영어학원을 그만 두고 집에서 영어책을 듣고, 읽는 것을 엄마와 함께 하는 중인데 오늘까지 4일째 성공이다. 


아침에 일어나 숙제도 하고 밥도 먹고 늦지 않게 준비하는 것이 좋다는 첫째와

(매일 반에서 몇등으로 등교할 것인지 예측하는데 다 들어맞고 있다며 흡족해 한다.) 

언니 학교 갈 때까지 뒹굴며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15분전부터 뒤늦게 몇 분 남았냐 10초 단위로 체크하며 화장실에서도 뛰는 흉내를 내는 둘째.



정말이지 2년 연속 제왕절개로 힘들게 낳은(아직도 수술흉터는 흉하게 남아 있다)

남편과 나의 아이들인데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렇게 다른 자녀를 내게 주신 그 분의 뜻이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덕분에 경선생 같은 불안이 높고 섬세한 아이도 

산만하지만 사교성이 좋은 시봉 같은 아이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해의 과정까지 오기 너무나 험난하고 솔직히 아직도 진행중이긴 하지만-


부모라고 해서 온전히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은 한 발 엄마가 앞에서 끌어주고 밀어주며 안고 가지만

조금만 지나면 내 손도 뿌리치고 친구들 손을 잡을 것이다. 






얼마 전에는 제주에서 보냈던 시간들에 대해 아이들과 이야길 나눴다. 

텃밭 가꾸기는 지금도 기억이 많이 난다고 

방울토마토가 얼마나 달고 맛있었는지, 수박도 키웠는데 엄청 빨갛고 맛있었고.

참외 따기, 귤 따기 체험도 재미있었고, 오름도 올라갔었고.

지나고 보니 다 좋은 이야기들이었다. 



 

당시에는 독박육아와 주말부부라는 프레임에 갇혀 

세상 나보다 불행한 사람 없을것이란 모드로 살았는데 


다시 돌아 보니  

5살, 4살의 주자매 어린 시절이 너무나 귀엽고

우리가 누렸던 좋은 것들이 많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지난 주에 딱 한 번 등교 같이 할 때.

언니 따라 학교 좀 일찍 가거라 시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