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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삶이 버거운 당신에게 달리기를 권합니다.

by 와락 2022. 8. 28.

잡지 <생활의 수첩> 편집장으로 일한 지 3년쯤 지났을 무렵일까. 

그때까지 잡지 편집을 해본 경험이 전혀 없었던 나는 매일매일 생전 처음 맞닥뜨리는 일들과 씨름하며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노력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었느냐면 그렇지도 않았다.

일이 술술 풀리기는커녕 날마다 새로운 가시밭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쓰무라 야타로 / < 삶이 버거운 당신에게 달리기를 권합니다 > 중 프롤로그 

 

 

강렬한 첫 문장이었다.

경험이 없던 사업을 맡아 말 그대로 허우적대고 있는 지금의 내 처지와 비슷해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좀처럼 원하는 성과가 나지 않는 데다 인간관계를 비롯한 이런저런 문제가 꼬여서 긴장을 늦출 수 없었고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는 저자의 말에 울컥...

아 정말 마쓰무라상 힘드셨겠군요.

작년보다는 한결 나아졌지만, 그럼에도 저 문장이 뼛속까지 이해가 되었다.

 

 

저자는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수면장애, 대상포진에 걸리고

심료 내과에 가서 약을 처방받았다가 우연히 '어디 한번 달려볼까?'의 마음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마흔세 살의 겨울. 그로부터 약 9년간 달리면서의 경험과 느낀 점을 담담하게 풀어놓은 글이다.

중간에 니시모토 다케시라는 일간지(호보일간, 마라톤 컨텐츠 제작/연재) 제작자와의 대담도 실려있다. 

 

달리기가 이렇게 좋으니 꼭 달리십쇼 여러분! 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책장을 덮을 때는 그렇다면 어디 나도 한번 달려볼까? 라는 마음이 들 정도로 진솔하게 쓴 글이다. 

 

저자는 크게 3개의 구성으로 

왜 달리게 되었는지

달리기를 하고 무엇이 달라졌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달리고 싶은지를 말하고 있다.

 

왜 달리게 되었는지와 달리기를 하고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여타 많은 영상과 책에서도 볼 수 있는 내용이라 크게 다른 것 없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달리고 싶은지' 이 부분은 새롭게 다가왔다. 

저자가 말하는 미(美)는 자기 혼자만 아름답다고 여기는 수준이  아니라 개인이 지닌 그릇의 크기와도 관계가 있다고 한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는지, 그 일을 하는 목적의식이 명확한가?'  

아직은 점을 찍어 선을 잇는 단계라서 차원 너머의 세계는 상상도 못하는 수준이지만 

언젠가 나도 '아름다움'을 향해 달릴수 있는 시기가 오리라 기대해 본다 .

 

 

 

 

밑줄 그은 구절 

 

 

번번이 어딘가에 툭툭 부딪히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길밖에 없었다. 그 대상은 사람이거나 일일 때도 있고, 때로는 시대나 문화일 때도 있었다. 조금만 전진하려고 해도 온갖 장애물이 가로막는 바람에 곧장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 그게 바로 당시 내가 처한 상황이었다. p6

 

평소 일 때문에 신경이 바싹 곤두서 있어서 진이 다 빠지는 것과는 다른 식으로 시원하게 기운이 빠져나가는 느낌을 안겨주었다. p21

 

당시 달리기는 나에게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계속 달리지 않으면 내가 끌어안고 있는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 몸이 그렇게 외쳤다. 몸이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달렸다. p23

 

'오늘은 어제보다 힘겨워지는 지점이 조금 더 멀어졌구나'라는 경험을 되풀이하는 사이 어느덧 '3킬로미터 완주'의 꿈이 이루어졌다. p25

 

-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 - 

한 가지 더 달리기를 통해서 최근에 깊이 깨달은 바가 있다. 매일이든 2,3일에 한 번이든 일상적으로 내가 계속하는 것이 쌓이고 쌓여서 언젠가 반드시 어떤 성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는 보람이나 실감처럼 감각적으로 경험하기도 하고, 숫자처럼 객관적인 자료로 드러나기도 한다. 

달리기뿐만 아니라 매일 하는 식사에서, 아주 사소한 업무에서,아니면 인간관계에서도 날마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꾸준히 한다는 것은 점으로 끝내지 않고, 점과 점을 이어서 선을 만든다는 뜻이다. 한 번 하고 포기하지 않고, 반드시 다음 기회를 만들어내서 조금씩이라도 이어가야만 어떤 식으로든 성과를 낼 수 있다. 

성과를 얻고 싶다면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관계가 깊어지고, 넓이가 확대되며, 깊이가 깊어질 수 있도록 생각하는 게 좋다. 거듭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원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p31

 

 

- 점이 아닌 선을 그리는 과정 - 

그 당시 나는 매일 달렸다. 점이 아니라 선을 그리려고 의식적으로 그렇게 했던 건 아니다. 다소 극단적인 생각이었을지 몰라도 하루라도 쉬면 제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만 같아서였다. 어렵게 두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달렸는데, 괜히 하루 쉬었다가 그동안의 노력이 전부 물거품이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 p33

 

주위 사람들에게 옛날과 달라진 것 같다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때로는 달라진 내 모습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예전에 알던 내 모습이 아니어서 그저 낯설허하는 것뿐이다. 

나는 날마다 변화하고 싶다.아직 본 적 없는 나를 만나고 싶은 욕구가 넘쳐나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p74

 

 

- 나에게 달리기란 -

"당신에게 달리기란 무엇인가요?"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저에게 달리기는 도전입니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매일 시행착오를 겪고 실패하고 넘어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다시 일어나고 또 도전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는 동안 새로운 것을 많이 마주하면서 내가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 p125 

 

중년에 접어들어서 마라톤에 빠지는 사람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체력이 떨어져서 힘에 부치는 현실 앞에서도 

'난 아직 살아 있어!'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싶은 마음이 어딘가에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p141

 

달릴 수 있다는 건 그만큼 힘이 있다는 거여서 어떻게든 되리라는 믿음이 솟아납니다. 일을 하다 보면 나 자신을 용서하기 힘든 날이 있는데, 그런 날도 달리면 나를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돼요. p179

 

 

- 여기서 멈출 것인가 - 

무슨 일이든 8할까지는 노력한 결과가 순조롭게 눈에 보이다가 거기서부터는 다른 차원이 시작된다. 지금까지 상승가도를 달리다가도 8할에 도달하고 나면 제자리걸음이 이어진다. 그럴 때 사람은 싫증을 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싫증이 났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그만두는 선택지를 고를 수 있다. 질렸으니까 달리기를 접고 축구를 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다음으로 다시금 배우고 익히는 방법이 있다. 8할보다 높은 경지에 오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머지 2할에 도전할지 말지 결단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새로 배우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남은 2할을 정복할 수 없다. 간단히 말해서, 그만둘지 아니면 다시 처음부터 진지하게 공부할지 선택의 갈림길에 선 것이다. p198

 

달리기에 존재하는 8할 너머의 세상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실천하면서 나는 더 빨리 달리거나, 더 멀리 달리거나, 마라톤에 어울리는 몸을 만드는 것이 상위 세상에 이르는 길이 아님을 깨달았다. 필요한 건 바로 '아름다움'이었다.  p199

 

우리를 둘러싼 갖가지 프로젝트와 일은 대부분 8할에서 멈춘다. 가로축에 시간을, 세로축에 퀄리티를 놓고 그래프를 그려보면, 시간에 따라 퀄리티가 쭉 상승하다가 돌연 상승세를 멈추고 옆으로 일직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어떤 한 시점에서 한계점에 다다른 것인데, 대체로 8할쯤 되는 곳이다. 

거기서 더 위로 올라가고 싶으면, 지금까지와는 판이한 테마가 필요하다. 어느 쪽으로 갈지 테마를 정해야만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는 법이다. 나는 '아름다움'을 달리기에 관한 새로운 테마로 삼았다. 달리기를 시작했을 무렵에는 아름답게 달리는 건 상상도 못 했다. 막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사람이 '난 아름답게 일해야지'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듯이. p202 

 

 

달리면 머리가 맑아진다. 체에 걸려서 불순물이 제거되는 느낌이라고 하면 맞으려나. 

일에 매달리다 보면 머릿속에 각종 정보와 감정, 업무와 지식이 쌓일 대로 쌓여서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순간이 있다. 머리에서 김이 나면서 사고가 정지되기도 한다. 그럴 때 달리기를 하면 머리를 식힐 수 있다. 달리기라는 군더더기 없이 단순한 행위가 쓸모없는 불순물을 거르고 중요한 알맹이만 남게 해 준다. p223 

 

어떤 의미에서 달리는 시간은 비현실적이며 현실 도피가 가능한 시간이기에 달리기는 나의 도피처라고 할 수 있다. 겨우 한 시간 현실에서 도망칠 뿐인데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온다면 꽤 크게 남는 장사가 아닌가. p226 

 

나이가 몇이든 계속 나아지고 싶다는 향상심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향상심은 나이에 따라 그 의미가 조금씩 달라진다는 생각이 든다. 50세를 넘으면, 향상심이란 '아직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뜻이 될 수도 있다. p237

 

 

빨리 달리려고 욕심내면 끝이 없다. 나는 거기에 목표를 두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아름답게 달리고 싶다. 

아름다움은 감동을 자아낸다. 나는 그 아름다움의 실체가 무엇인지 앞으로 계속 알아가고 싶다. 

달리기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 가운데 아름다움은 내재하고 있다. 어쩌면 나는 내 삶 속에 숨어 있는 사소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p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