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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함께

미국에 다녀왔습니다(1) 17.08.14-08.26

by 와락 2017.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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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후로 나는 카드를 2개만 사용하고 있다. 

하나는 입출금 형태의 체크카드와 다른 하나는 신용카드인데 패밀리카드이기 때문에

나의 모든 사용 내역이 남편에게로 실시간 전송된다. 

해당 카드를 쓰는 이유는 아시아나 항공 마일리지를 모으기 위해서이며 결혼 10년차가 되어 가는 시점에는

남편과 내가 그렇게 기다려왔던 세계일주를 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마일리지가 쌓여 있었다. 




세계일주가 아니라면

주자매와 유럽 미술관 투어라도 해야 겠다고 다짐했지만 계획은 어긋나기 마련.

남김없이 시아버지와 함께 시누이를 보기 위한 미국행 티켓 구매에 마일리지를 모두 쓰게 될 줄이야. 


아버지 혼자 미국을 어찌 가시겠느냐

주자매도 학년이 더 올라가면 방학 때 미국 갈 수 있겠느냐

휴직 중일 때 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

그래도 누나 인데 한 번은 다녀와야 하지 않겠느냐 

남편의 논리에 반박은 할 수 없었다. 

솔직히 나는 마일리지를 쓰는게 너무나 아까웠지만(10년간 마일리지를 생각하면서 상상했던 것들이 떠올라)

그렇다고 비행기 티켓 구매를 위해 천만원 가까이 되는 돈을 쓸 수도 없었다. 



시봉이는 미국 출발 200일 전부터 D-day 를 카운트 했었을 정도로 기다려왔지만

나는 뭐랄까. 여행인듯 여행 아닌 미국행 방문 날짜가 다가오는 것이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가기 전에 시누이가 부탁한 숏다리와 조카들 카카오프렌즈 인형을 사서 짐을 싸는 순간부터는

13시간이 넘는 비행을 주자매와 함께 한다는 생각에 이번 미국행은 여행이 아니다.

훈련입니다. 정신 차리십시오 라는 자세로 공항버스에 올랐다. 




난생 처음 장거리 비행이지만 긴장을 많이 해서인지 아니면 비장하게 각오를 다져서인지 생각했던 것보다는 덜 힘들었다. 

시아버지 옆에 앉느라 어쩔 수 없이 뒷자리에 자리를 한 남편이 느긋하게 맥주를 시켜 먹는 것을 보면서 속이 부글부글 했지만.

잠들만 하면 주자매 화장실과 음식, 간식을 도와주다보니  내리기 1~2시간 전에는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머리카락이 뻗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옆 줄의 외국인이 돌도 안 된 아이를 안고 큰 아이 2명을 케어하는데도 미간에 주름 하나 없는 것을 보고는 또 반성하고. 



그렇게 도착한 미국.

LA 공항에서 고모와 고모부를 만나 집으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낯설어 촌스럽게 이케아과 토이저러스 간판을 보며 반가워했다. 

시누이가 사는 곳은 어바인이라는 곳인데 검색해보니 교육도시로 연관검색어에 오연수가 나올 정도로 

연예인들이 아이 교육 때문에 많이 오는 도시라고 한다. 




일년 사이에 15센티정도 훌쩍 커버린 조카들을 보니 반갑고.

애기들이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컸는지.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햇살에 건강하게 그을린 피부색도 예뻐보였다. 

시누이는 조카들 라이딩과 한국에서도 안하던 도시락을 싸느라고 분주한 주부의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고모부는 새로운 직장에 다니느라 아침 일찍 집을 나가시고. 


집세가 비싸긴 했지만 치안과 커뮤니티가 잘 되어 있어 공공시설을 이용하기도 너무 편리하고 

쾌적한 곳이었다. 물가도 소득대비 낮은 수준이라(물론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오히려 생활은 미국이 한국보다 나은 듯 했다. 일단 코스트코 소고기가 생각했던 것 보다 너무 맛있고 가격도 싼데다 

하루 만에 상하는 과일과 2~3일만에 곰팡이가 피는 빵을 보면서 한국이 수입하는 과일과 밀가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자국민을 위한 먹거리에는 꽤 신경을 쓴다는 미국. 

살충제 계란 뉴스를 미국에서 보면서 시누이는 농담 삼아 한국가면 계란 먹기 어려우니 여기서 많이 먹고 가라 했지만

정말 씁쓸했다. 내가 이용하는 생협의 계란 조차 토양이 오염되어 있어 안전하지 않다고 하니. 





집 앞에 있는 1분거리의 퍼블릭 수영장은 동네 꼬마들이 모이는 곳이었는데

자쿠지까지 있어서 저녁을 일찌감치 먹고 별을 보며 노천탕을 하기도 했었다. 

처음에는 이 모든 것이 공짜라는 것에 놀라고 그 만큼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라고 해서 두 번 놀랐다.

화요일 금요일 일 주일에 두번은 잔디깎는 일을 하시는 분들이 잔디를 깎고 수영장을 청소하고 길을 깨끗하게 관리한다. 

노숙자는 경찰관들이 다른 도시로 옮겨다 놓는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대도시에 있는 노숙자조차 없고

밤 8시면 대다수의 상점이 문을 닫는다. 시아버지는 막걸리 한 병 내 맘대로 살 수 없고 대중교통이 없다고 

사람살기 불편한 곳이라고 계속 말씀하셨지만 엄마인 내 입장에서는 정말 아이들과 함께 살기엔 좋은 곳이었다. 


나는 외국 연수 경험도 여행 경험도 별로 없어 잘 몰랐는데(그저 글로만 읽었을 뿐)

일단 외국인들이 보여주는 여자와 아이에 대한 매너에 감동했다.

남편과 아침 산책을 하다가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과 마주쳤는데 사실 그 정도 거리는 부딪힐 수준도 아니었는데도

크게 미안해 하며 사과하는 남자사람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나의 타임라인은 '노키즈존, 여혐, 몰래카메라' 등으로 어지러웠기에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이었지만 대다수 많은 사람들이 아이에 대해 '환대' 해 주는 것을 보면서 고마울 정도 였다. 






동네 수영장과 잔디밭을 가면 

백인,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인, 히잡을 두른 무슬림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공놀이를 하고 그네를 밀어주고 있다. 

한 번도 대한민국을 나가서 살아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너무나 강렬하게 

주자매에게 이런 환경의 교육을 제공하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렸다. 

나의 좁은 세계관에서 벗어나 아이들에게는 넓고 원대하고 풍성한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대학에 가는 방법도 다양하다는 미국에서. 꼭 대학에 가지 않아도 괜찮은.

대학의 순위가 한국처럼 일률적으로 서열화 되어 있지 않는 곳에서 보다 즐겁게 학습할 수 있는. 

아마 한국에서보다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여유로워 보이는 시누이를 지켜보면서 더욱 욕망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미국 오기 전 경선생 친구들을 불러 미술관 투어를 하면서 나의 노력으로 아이들이 더욱 친해지지 않을까 하며

노심초사 하던 내 모습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심각하게 영주권을 받으려면 어찌 해야 하는지도 확인해 봤다. 

한인마트에서 박봉에 시달리며 5년간 일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한다. 

어처구니 없이 흔들렸지만 무엇보다 '욕망'의 근원이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것인데 

그것 역시 여전히 내가 아이에게 나 자신을 투영하고 아이의 인생을 나의 대리전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서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나는 지금 시누이의 집을 방문한 것이다.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신나게 영화를 보며. 

아시아나 키즈 기내식은 맛이 없었다. 주로 튀김류와 스파게티, 빵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처음 나온 기내식만 맛 보고는 그 다음부터는 거의 손에 대지도 않았다. 



시누이네 집 앞에서 바라본 풍경. 



산책을 나가서 시봉이 찰칵


도심에 호수가 있고 주변으로 멋진 주택들이 모여 있다. 

그림 같은 곳에 감탄을 하고 있는데 시누이 말로는 호수 주변이라 

풍경은 아름답지만 바퀴벌레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어차피 가질 수 없는 것임에도 그런 이야길 들으니 흠흠 모든 것을 다 가질 순 없는 것이지. 하며 안도하는 나란 녀자.




미국에 가기 전만 해도 비오고 난 후 잠깐 하늘이 맑아지다가 다시 미세먼지로 뿌옇게 되고를 반복하던 중.

청명한 하늘만 봐도 가슴이 후련해 지는데 도시 곳곳 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어

시누 언니는 아버지와  라스베가스와 그랜드캐년에 가라고 했지만

우리는 계속 여기가 리조트라며 외면하고... 



집 앞 수영장과 자쿠지.

이 모든 것이 무료이다.(사실은 세금에 포함되어 있는)



수영자 앞에 있는 놀이터. 그네를 타고 있는 경선생. 




매주 수요일 저녁 6시에 인근 동네 부모들이 모여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기로 했다고 한다.

놀이터에 있는 우리에게 친절하게 오라고 해서 참여 했는데

주자매는 못알아 듣겠다고 지루해 했다. 

결국 2권 정도 읽었을 때 미안하다며 집으로 돌아왔지만. 

여행 3일째여서 한국과 다른 일상이 그저 새롭고 좋아보이는 와중에 

나의 로망인 잔디밭에 모여 책 읽기를 미국인이 직접 시연하니 그저 감탄할 수 밖에.

저녁 6시에 집에 있는 아빠들이며 재잘재잘 너무나 밝은 아이들.

잔디밭에서 막 굴러다니는 꼬맹이들과 몸집만한 개. 

아니 평일에 이렇게 여유로운 저녁을 보내고들 있었던 거야? 정말로?



트레이더조에 가서 와인을 보는데 막 침이 고이고.

정말 맛있는 와인이 만원도 안한다는 사실에 티 내지도 못하고 혼자 흥분.

가족 여행이 아니었음 매일 매일 와인을 먹었을 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7시 즈음 산책을 하는데 사진에 담지는 못했지만 

시봉이 나이로 보이는 꼬마들이 헬맷을 쓰고 기다란 막대기 같은 것을

배낭에 꽂은 채 자전거를 타고 힘차게 가길래 따라가 보니 호숫가에 모여서 낚시대를 던지고 있었다. 

진심으로 아이들이 부러웠다. 주자매의 아침 일상과 비교해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