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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희생이란 단어는 집어치우고

by 와락 2021. 2. 27.

 

박동훈 : 그냥 … 나 하나 희생하면 인생 그런대로 흘러가겠다 싶었는데.
겸덕 : 희생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이뤄 놓은 건 없고, 행복하지도 않고, 희생했다 치고 싶겠지.

          아니 그렇게 포장하고 싶겠지. 지석이한테 말해봐라. 널 위해 희생했다고. 욕 나오지. 기분 더럽지. 누가 희생을 원해.

          어떤 자식이 어떤 부모가. 아니 누가 누구한테. 그지같은 인생들의 자기 합리화, 쩐다 인마.
박동훈 : 다들 그렇게 살아 
겸덕 : 아유 그럼 지석이도 그렇게 살라 그래. 그 소리에 눈에 불나지. 지석이한테는 절대 강요하지 않을 인생. 너한테는 왜 강요해.
          너부터 행복해라 제발. 희생이란 단어는 집어치우고. 뻔뻔하게 너만 생각해. 그래도 돼. 

 

 

 

 

 

뒤늦게 넷플릭스에서 '나의 아저씨'를 보게 되었다.

인생은 내력과 외력의 싸움이라고,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담담히 이야기하는 아저씨 박동훈.

드라마를 보는 동안 나의 내력은 어떤지 잠시 고민해 보았다.

바람만 불어도 흔들거리는 것 같은데... 

 

 

잘 살고 있다. 

어떨 때는 외력에 지지 않으려 버티며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박동훈 처럼, 욕망과 양심 사이에서 계속 진자처럼 이동한다.

'어떤 인간이다'를 보여주고 싶어 안달복달 하다가도

천년만년 살건가. 어차피 한 줌의 재가 될 텐데...모든 것이 의미 없어지기도 한다. 

이 오르락 내리락을 하면서 마흔 한 살이 되었다. 

 

 

지난 연휴 전에는 석화를 먹고 노로 바이러스에 걸려 고생을 했다. 

친정어머니, 나, 경선생까지 셋이 걸려 연휴내내 화장실을 들락날락. 

정말이지 모든 것을 비워낸 듯한 느낌이었다. 

약 열흘 간의 고생 끝에, 수액을 두 차례 이상 맞고 서야 회복했는데 그 이후로 좋아하던 커피마저 끊게 되었다.

한 껏 비워내면서 내 안에 해소되지 못한 감정의 쓰레기

불안, 조급함, 서운함, 한껏 힐난하고 싶은 마음도 같이 배출되었던 듯 싶었다. 

회복되고 나서는 몸도 마음도 조금 편안해졌으니. 

 

 

어릴 때는 마흔의 나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거라 생각했다.

마음의 그릇도 넉넉해 지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어린 친구들한테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그렇지 않구나. 아직도 고등학생과 대학생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소녀도 청년도 아닌 내가 마음 깊은 곳에 여전히 있다. 

 

 

얼마 전, 남편이 결혼기념일 뭐 갖고 싶냐고 물었을 때

떠오르는 것이 없어 어머니께 드릴 공청기를 나도 모르게 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에 대한 욕구를 누르면서 지내서인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이렇게라도 나의 욕구를 누르면서 장바구니에 아이들과 가족을 위한 물품으로 채우는 것으로 

'희생'이라고 포장하고 싶은 건 아닐까.

 

 

나부터 행복하기 위해

대학원도 다녔고, 이직도 했고, 자격증도 취득했다.

하지만 '행복'은 모르겠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여전히 더 갖고 싶어 욕망하고, 현실에서 정말 원하는 것을 물으면 대답조차 제대로 못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 주자매에게도 강요하지 않을 인생.

희생이란 단어는 집어치우고, 나부터 행복해지기.

희생 대신 선택이란 단어로 바꾸기.

그럼에도 뽀얗게 쌀뜨물 같은 미세한 감정이 올라오면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기.

마흔 한 살의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