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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안식휴가 잇츠굿

by 와락 2023. 4. 26.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삶을 통제하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너도나도 말하는데, 월급은 조금 오르고 삶의 비용은 많이 오른다. 쉬지 않고 벌어야 한다,라고 자신에게 속삭인다. 무엇을 하고 싶기에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돈을 벌고 있지 않다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삶의 순간들을 포기해야 하는 나날들이 이렇게 늘어난다. 삶과 돈을 교환하기도 지친 한국인에게 마침내 번아웃의 파도가 밀어닥친다. 그 파도 위에서 느긋이 서핑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떤 영양제를 더 먹어야 버틸 수 있을까, 고민하는 주말 아침이 밝는다.

그래도 어쩌다 한 번씩 기적은 일어난다/ 김영민 / 중앙일보 4월 25일자 칼럼

 

 

 

안식휴가 7일째이다.

슬랙과 메일을 열어 보지 않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휴가 다음 날 정도를 제외하고 무심히 외면하고 있다.

목표 판매액과 해야 될 것들이 산적해서 휴가를 내는 것도 부담스럽고

지난 주 까지만 해도 마음이 묵직했으나 일주일 지난 지금은 '아무것도 떠올리고 싶지 않습니다' 마음이랄까. 

 

 

안식 휴가 첫째날은 오양을 만나고 왔다.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고 있어 자유 여행을 돕는 여행사를 만나 미팅을 하고 

종로로 사무실을 옮긴 오양을 만나 점심도 얻어먹고, 차 한잔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 저녁도 챙겨주고 하루를 마무리. 

첫째날이라 직장인 모드로 분주하게 아침을 시작하고

오양과의 대화 주제도 40대 직장인, 이대로 괜찮은가였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에서 쿨쿨 졸면서 다 잊은 듯 ㅎㅎ

 

 

둘째 날은 이직하신 배사마를 뵙고 왔다.

그분의 퇴사 후 여정을 계속 지켜보면서 심경의 변화를 전해 듣고 있는데

어찌 되었든 어제보다 나은 내일의 나를 위해 성장해 가시는 모습이 귀감이 된다. 

늘 그 시점에 맞는, 본인이 깨달은 인사이트에 맞게 나에게 당부와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는데 

이번의 조언은 팀원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말라는 거였다.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같이 일하자.

실현이 될지 안 될지 두고 봐야 될 일이지만 서로에게 그 정도의 신뢰를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휴가를 내고 혼자서 뷰 좋은 카페에 가서 차 한잔을 하는 게 나름의 계획이었는데

아침에 아이들 학교 보내고, 빨래를 돌린 후 말끔해진 주방 테이블에 앉아 창밖을 보니 

우리 집 아파트 뷰도 너무 아름답다. 

봄바람에 산들거리는 나무, 고요한 놀이터(몇 시간 후면 아이들이 와서 그네에 앉겠지)

 

 

나는 늘 분주하게 행동하며 사는 사람이고

또한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지 않으면 더욱 힘든 유형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번아웃'의 파도에 휩싸인 것은 아닌가 싶었다.

 

굉장한 피로감을 느끼고, 집중하기 어렵고

그걸 누르기 위해 달리기도 해 보고 다른 몰두해 볼 것을 찾지만

쉽사리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 불안은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와 내 가족의 삶을 통제하고

삶의 비용을 치루기 위해 쉬지 않고 돈을 벌어야 한다라고 속삭이는 것.

살아내기 위해 포기 할 것들이 늘어나다 보니 마음의 여유도 느긋함도 계속 없어지는 것 같다.

 

 

 

실상 여행 조차도 안식휴가 중에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후회할 지도 모른다는 압박을 느끼며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했다.

 

 

여행을 준비 하면서

비용이 많이 들어 부담스럽긴 하고(돌아와서 회사에 집중해서 다녀야 할 이유도 생겼고) 

그럼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기간과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오양이 사준 솥밥
인사동 찻집

 

배사마가 사주신 샤브샤브, 먹기 전 비싼거 아니냐며 같이 불평했으나 먹을수록 맛있다며 대만족..
바람에 산들거리는 나무들. 초록초록 너무 예쁘다.
요즘 커피 대신 차를 마시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