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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함께

아이들은 자란다9

by 와락 2017. 6. 12.

하늘의 별들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본 또 한 명의 소년이었고, 

그 경이로움을 내게 나눠 준, 나의 아버지 브라이언 로스에게 

 - 스테파니 로스 시슨 




아마존 올해의 어린이책 타이틀이 붙은 '칼 세이건' 책을 경에게 자기 전 읽어주었다. 

작가가 아버지에게 쓴 헌사를 소리내어 읽으며 나중에 커서 글을 쓴다면 이렇게 

엄마에게 글 써달라고 하니 빙그레 웃는다.


시봉이는 아빠의 거절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랑 자는 거 오케이, 아유 오케이? 

아빠의 아임 낫 오케이는 못들은 척 하며 작은 방에 들어가고 

나는 시경의 침대 머리맡에 앉아 잠들 때까지 옆에서 소설 책을 읽었다. 





요즘 아이가 읽고 있는 책들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전래동화, 신화, 별자리로 이어지던 경의 관심은 학교에서 우유 급식 시간에 보여주는 

짧은 역사 동영상을 통해 삼국사기까지 이어졌다. 

아이가 읽고 있는 책은 시대별 인물 중심로 구성된 시리즈물인데 지나치게 인물을

아름답고 멋지게 그려서 부담스럽지만(이건 내 생각일 뿐이고) 시경이는 그것 때문에 좋아하는 듯 하다.  


며칠 전에는 '엄마 온조가 처음 백제 세울 때 이름이 뭐였지? 아 기억이 안나네.." 

라고 내 얼굴을 빤히 보는데 잘 모르겠다고 하자 실망한 얼굴로 책을 뒤적이더니 

'맞아. 십제. 맞아 십제였어' 하고 하며 비류와 온조 미추홀 등등 들먹이며 이야기를 한다.

아이에게 읽히려고 도서관은 열심히 들락날락 거리며 빌려오지만 한글책 읽어주는 건 소홀했더니 

얕은 지식이 금방 드러난다. 




아이와 매일 계획표대로 거의 빠짐없이 실행 중인데 

얼마 전 세운 목표 영어책 100권 읽기(듣기 포함) 달성해서 함께 팥빙수를 먹었다. 

인라인 수업은 가능하면 매주 참석해서 엄마들과도 만나고 

주 2회 이상 집에 친구를 초대해 학원을 같이 다니지 않아 만나기 힘든 친구들과 시간도 만들고 있다.

아이는 놀고 혼자 테이블에 앉아 책을 보거나 혹은 사전쓰기를 하는 것이 나의 휴식인데 그 시간 확보도 사실 쉽지 않다. 

밀착해서 아이를 돌보는 것 또한 친정 엄마가 계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고.



지난 주에는 아이 반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엄마들까지 함께) 

두 시간 넘게 시간을 보냈는데 휴- 쉽지 않았다

(이것이 결코 쉽지 않다, 사실은 매우 어렵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내향성 인간 나의 남편은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면 더욱 친밀감을 쌓을 수 있겠지만, 사실 몇 번 만나지 않은 사람들과 

내밀한 이야기(아이의 이야기, 장점, 단점 등등)을 한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이 자칫하면 평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런 자리가 엄마 역시도 불편한데 나의 엄청난 노오오오력에도 불구하고 

잘 놀다가 무슨 일 때문인지 마음이 상해서 헤어질 때 또 속상한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하루에 열 두번도 찡그렸다, 웃었다,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 다시 풀렸다 반복하고 있긴 하지만

그 날은 나도 힘이 들어 아이에게 큰 소리를 냈다가 노력한 결과를 얻지 못해서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냐는 

남편의 말에 아니라고 할 수가 없어 시경에게 사과를 했다.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도 언제 울었냐는 듯 해사하게 웃는 아이를 보며 

다시 한 번 내 육아휴직의 목표, 목적을 상기시키고.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일까. 

대체 무엇을 위해 

여기, 지금, 그리고 왜.



비장하게 각오를 다지다가 

시봉이를 보면 돌연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내가 워킹맘이라서, 못 챙겨줘서 하는 죄책감들이 티끌이 되어 날아가고  

연년생 주자매의 이처럼 다른 성향은 그저 유전자 탓이 된다. 




시봉이의 꿈은 농부에서 청소부로 요즘에는 사육사로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 

청소부가 되겠다면서 방청소는 안한다고 하고, 사육사가 꿈이라면서 엊그제 에버랜드 갔을 때는

동물들 똥냄새가 질색이라고 '아우 냄새야' 라고 하며 자그마한 손으로 코를 막는다. 

언니가 좋아하는 역사책만 잔뜩 빌려오고 자기가 좋아하는 생물책은 한 권도 없다면서 서운해 하고(미안하다. 끄응)

오늘은 언니 줄거라고 교회에서 받은 과자를 안 먹더니만 점심 먹자마자 아빠의 유혹에 넘어가

봉지를 열더니 '언니 줘야 하는데' 말만 하면서 야금야금 다 먹어버렸다.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 마다 다 아는체를 하면서 포옹을 하고, 친구들 이름도 마음대로 부르고는 

친구가 '그 이름 아니거든' 눈을 치켜 세우면 '크크크' 하며 그 자리를 금새 떠나고 

누구 다리가 제일 높이 올라가는지 보자며 키큰 친구가 말하면 대충 다리 한 번 올려보고 

'하하 예나가 제일 잘 하네, 최고야' 라며 '우헤헤헤' 웃으며 달려간다.



나아지고자 하는 '향상심', 혹은  '호승심', '경쟁심' 따위는 찾아 볼 수가 없고

그저 모든 것은 유머가 되고야 만다. 

아니 어쩌면 '웃기는 일'에서는 누구보다 앞서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목표를 달성한 자 




소방대원 주시봉



엄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요. 시봉이가 만든 지구. 








일요일 오후 아빠와 농구 같이 하는 주자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