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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함께

미국에 다녀왔습니다(2) 17.08.14-08.26

by 와락 2017. 8. 30.

미국에 가기 전

주자매에게 매일 DVD를 보여주고 영어책을 읽어 주었다.

민이오빠와 영어로 이야기를 할 거야! 동기 하나로 하기 싫을 때도 나름 열심히 따라 하던 주자매였는데

미국에 가서는 막상 영어를 한 마디도 하지 않아도 전혀 어려움이 없는 생활을 하고 와서

나의 예상과 다르게 영어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우선 시아버지와 함께 한 여행이라서 한국 방송을 많이 볼 수 밖에 없었는데 

온디맨드 서비스가 있어서  PC와 TV를 연결 후 '광고'를 보면 다시보기 형태로 예능, 드라마 , 뉴스등을 계속 볼 수 있었다.

집에 테레비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아침드라마를 본 적이 없는데, 시아버지가 애정하는 훈남 오순남이란 

드라마를 본 주자매는 너무나 자극적인 이야기에 넋이 빠져 있고. 


미국 도서관은 일인당 50권 정도 책을 대여해 주는데 

매주 3곳의 도서관 셔틀을 하며 4인 가족 꽉 채워서 약 80권 정도 대출해 오는 나로서는 너무나 기쁜 소식이었다. 

시누이에게 부탁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는데 벽면을 꽉찬 책들 속에서 주자매가 읽을 만한 책이 어떤 것이 있을까 

살펴보는 즐거움은 잠시. 그것은 나의 허영일 뿐이고. 

주자매 머리 속에는 온통 수영과 오순남, 친척 언니 오빠와 놀이로 꽉 차 있었다.  

도서관에서도 한국인은 바로 알아 볼 수 있었다.  영주권자가 아닌 방문객이나 주재원으로 보이는 사람들. 

부모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열고 있고, 그 앞에 아이들은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다. 

두어 곳 밖에 다녀보지 않았으나 책을 읽고 있는 곳에서 문제집을 풀고 있는 사람들은 그 가족이 유일했던 것 같기도. 





시아버지는 3일째 되던 날부터 리조트에 온 것 같다며 즐기는 우리와 달리

냉장고 문을 계속 여시며 막걸리의 갯수를 세고 자주 산책을 나가시며 답답해 하셨다. 

시누는 남편과 내가 아버지와  함께 라스베가스와 그랜드캐년을 다녀왔으면 하셨지만

더운 여름에 7시간을 버스 타고 달려가 넓게 펼쳐진 돌 따윈 보지 않겠다며 남편은 완강했고 

나는 7시간을 갈거면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금문교를 보고 싶다. 스탠포드 대학교를 가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예전 제주에서 모든 가족이 휘닉스아일랜드 수영장을 가고 아버지가 우도 가고 싶다고 하셨을 때 

함께 가서 땅콩막걸리를 드시는 아버지 옆에 있었던 사람은 며느리인 나였음을 계속 남편에게 상기시켰다. 

결국 시아버지는 집과 수영장만 다니는 일상을 떠나 한국 여행사에서 주선하는 라스베가스+그랜드캐년 여행을 떠나셨다.





남편은 미국에서 면도를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무척 싫어하는데 이유는 수염을 기르면 일본인 같고, 씻지 않은 듯 지저분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휴가 중에 '깎지 않아도 되지 않는 자유'를 갈망하는 남편에게 미국에까지 와서 매일 면도를 강요할 수 없어서 

그냥 두었지만 디즈니랜드에서 이상한 일본인 아줌마가 남편과 시봉이를 보고  일본인 인줄 알고 소리를 빽 질렀으며

돌아가는 비행기에서도 한국인 승무원이 시아버지 옆에 있는 남편에게는 영어로 말을 걸었다. 




주일 교회만 겨우 나가는 우리부부와 달리 고모네 가족은 수요저녁예배, 주중 성경 모임 등의 활동을 하고 계셨다. 

예배 정도는 생각했으나 주중 모임에 갈 거란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라 잠시 주춤했지만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누군가의 집, 예배당이었다. 

나눔과 교제를 미국에서 이렇게 인텐시브하게 하게 되다니.

어튼 우리부부에게는 어려운 부분이다. 특히 남편은 낯선 이들이 모인 곳에서 엄청나게 많은 말들이 오고가면

아무리 그것이 환영의 언어일지라도 에너지 소모가 큰 편이라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남편의 초조함(집에 가고 싶다 얼굴에 씌여 있음), 시아버지 지루함(빨리 가고 싶다), 주자매의 짜증(대체 언제 가)사이에서

목을 움츠리고 조용히 앉아 있다 집에 오곤 했다. 

경의 학교 생활, 사회성에 대해 고민은 하고 있지만 부모 역시 이런 자리가 있으면 피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으며

친절함이 미덕인 미국에서조차 달라짐이 없는 우리 부부를 돌아보며 사교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주말 오전에는 9명의 가족이 모두 40도가 넘는다는 무더위를 뚫고 팜스프링스 아울렛에 갔다.

쇼핑을 통해 인내심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시험하며 가족애를 다지고 

쇼핑이란 내 것을 살 때는 전혀 지치지 않고 힘이 솟는다는 진리를 

시아버지의 선글라스, 조카의 바지, 주자매의 목걸이, 나의 후드티 등의 구매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저녁에는 우리가 로망했던 공원에서의 바베큐를 고모부가 직접 해주셨다. 

미국산 소고기와 한인마트에서 파는 숯을 사와 수영장 옆에 있는 바베큐장으로 갔는데 

매캐한 연기 사이로 고기가 구워지는 사이 띠리링 아이스크림차가 지나갔다. 

잔디밭에서 놀던 아이들이 어느새 뛰어가 아이스크림 차를 불러세워 

시아버지가 주신 돈으로 하나씩 사서 입에 물고 돌아왔는데 책에서 보던 아이스크림차의 소프트콘이 아닌 

마트에서 파는 것 같은 아이스크림바 같은 것이어서  조금 실망스럽긴 했지만 아이들은 무척 좋아했다. 






붉게 타오르는 노을과 달이 차고 기울어지는 모습들이 생생하게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아주 시골도 아닌데도 고기를 구워 먹고 도란 도란 이야길 나누는 사이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들이 보였다.

비행기 안에서도 코감기 약을 먹던 시봉이는 미국에 가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훌쩍이던 코가 말라 버렸고

조카들 비염도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한 20여분 차를 타고 가면 비치가 있는데 참 아름다웠다. 

시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나는 한국인답게 비교와 평가를 잊지 않고 명소를 방문할 때 마다 각자의 지식 범위에서

여긴 제주도 어디랑 비슷, 혹은 중국의 어디랑 비슷, 가격은 얼마(달러를 바로 원으로 계산), 가성비를 따지며

합리적 소비인지 체크하며 대화를 나눴는데 그것도 얼마 있다 그만두고 말았다. 

(참고로 시아버지는 이런 해변에 어찌 아이스크림 장사 하나 없냐며 계속 안타까워 하셨다)

계산을 하고 따질 수록 내가 나고 자란 자랑스런 대한민국에 대한 아쉬움이 계속 생각났기 때문이다. 


안전은 무엇보다 우선으로 하는 것. 해야 하는 것 보다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명확한 사회.

그 규범과 그것을 지키려는 공동체의 노력이(어마무시한 벌금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러웠다. 

내가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면 아마 이렇게까지 생각을 못했을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알고 있다. 단 2주간의 경험으로 속단하는 것이라는 것도. 

그럼에도 모든 사거리에 3초간 정지.매너 있게 양보하고 인사하기. 

고속도로 진입시 꼬리 물기 방지하는 신호등. 곳곳에 보이는 경찰들. 


아이가 만 13세가 되기 전에는 마트에서 물건도 혼자 살 수 없는 것. 

여러 인종이 모여 살기 때문에 누가 더 예쁜지, 멋진지 동일한 잣대로 비교조차 하지 않는다는.

한인 교회에 다니는 여자 아이 중 통통한 친구가 있었는데 아이는 스스로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한다고.

엄마가 나중에 코를 좀 성형하는게 어떠냐 물으니 나는 매우 예쁘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돌아보면 시봉이와 경선생도 스스로를 매우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데 

나는  꽤 객관적인 사람이라며 말도 안되는 잣대를 들이밀고 아이를 평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그림 엽서에 나올법한 풍경을 보면서도 머릿 속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일주일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주는 아빠와 주자매 


Aliso  비치. 파도가 얕은 곳이라고 했는데 우리가 간 날이 유독 심해서 구조대가 자주 와서 경고하고.

정말 빨간색 수영복을 입고 달려와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시봉이는 춥다고 모래 찜질을 하고. 


스탠포드 대학교를 가보고 싶었는데 아쉬움은 UCI 에서 달래기로 했다. 


도서관은 외부인도 출입 가능해서 들어가봤는데 창문 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공간에서 공부가 될까. 햇살만 봐도 밖으로 나가고 싶을 것 같은데.



남편이 무척이나 가보고 싶어했던 인앤아웃 버거. UCI 내에 있어서 학생들이 많았다. 

난 햄버거 맛이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는데 남편은 빵이 신선하다며. 쉑쉑버거랑 비교하면서 알려 주었지만

나는 쉑쉑버거도 안 먹어서봐서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감자 튀김은 괜찮았고 밀크쉐이크는 맛이 진해서

마치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녹인 듯했는데 처음 한 두번은 맛있다 였지만 아이들 모두 느끼하다며 다 버리고 말았다. 








외식했던 곳 중에서는 수플레테이션이라는 곳이 제일 좋았다. 

빕스를 연상시키는 곳인데 고기는 없고 야채와 수프, 빵으로 이루어진 식사였다. 



팜스프링스 아울렛. 너무 뜨겁고 뜨겁고 뜨거운 곳이었다. 



아울렛 가는 길 차창 밖 풍경. 넓게 펼쳐진 황량한 들판+언덕을 넘어서면 마을이 나온다. 다시 또 반복. 



고모가 사준 선글라스를 쓰고 집 주차장 근처에서 찰칵



공원 바베큐 로망은 실현되었고.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