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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계속 달려보겠습니다.

by 와락 2022. 8. 27.

 

 

처음부터 잘 달리는 사람은 없다.

출발선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작이 미숙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동시에 잘 달리지 못한다고 해서 그 순간들이 불행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행복은 무언가를 잘해서가 아닌, 더 나은 내 모습을 꿈꿀 수 있을 때 피어난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매일 밤 미숙함에 발목 잡혔지만 바닥을 뒹굴면서도 시선은 더 나아질 내일을 향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달리는 명분은 충분했다. 허술하지만 행복했다.

- 아무튼, 달리기 / 김상민 - 

 

 

시작은 우연히 접한 유튜브 한 편을 보고부터였다. 

한 달 동안 매일 달리면 생기는 효과. (단, 음식은 마음껏 먹기)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같은 영상이었는데

토요일 저녁, 콩나물을 다듬으며 별생각 없이 틀었다가 몇 편의 영상을 정주행 하게 되었다(채널 구독과 밴드 가입까지...)

30일 달리기 이후로  100일 달리기, 200일 달리기, 최근 1000일 달리기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무릎이 아파 달리기는 생각하지도 못한 나도 '어디 한번 도전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영상이었다. 

 

7월부터 NRC 어플을 켜고 살살 달리기(라고 썼지만 걷는 것과 별반 차이는 없었다) 시작했는데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나 자신에게 감동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 달리기가 되다니!!

지난가을, 경주 여행에서 숙소 근처 한 바퀴 돌 때 잠깐 뛰었다가

헐떡거리는 숨을 가누지 못한 스스로가 너무 한심스러웠는데...

그 이후 필라테스를 한 덕분인지 500미터 가까이 걷고 뛰기를 반복할 수 있었다.

 

매일 달리기 기록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그래 봐야 네이버 블로그)에 기록하고 있다.

 

 

오늘까지 10일 정도 연속 달리기에 성공했는데 

스스로가 대견해서 와인이라도 한 잔 하사하고 싶지만 사양한다(손을 내 저으며)

내일 아침 컨디션만 좋으면 뛰어야 하거든요(어깨를 살짝 으쓱하고)

 

주말에 가는 동네 체육공원에는 육상 트랙이 있는데

이전에 주자매 쫓아간다고 반 바퀴 약 200미터 따라가다 아주 혼쭐 난 적이 있었다. 

그 트랙을 오늘은 무려 12바퀴 이상 달렸다(대견하군요 나란 사람).

 

나름 5시 30분쯤 출발해서 이르면 6시가 채 안 되는 시간에 도착하는데도

트랙 안은 이미 도착한 사람들로 활기차다. 

'아무튼, 달리기(김상민)의 한 구절처럼 '성실함과 에너지를 재료로 인간의 형상을 빚는다면 바로 이 사람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해리 포터'에 비유하면 아침 러너는 그리핀도르형 인간에 가깝다. 양(陽)의 에너지를 뿜어내며 긍정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

건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그들 사이로 들어가 한 곁에서 달린다는 것 만으로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처음 남편을 따라 체육공원에 갔을 때는

목이 늘어난 면티셔츠에 레깅스를 입고 경선생 운동화를 빌려 신고 갔는데  

육상대회인가 싶을 정도로 제대로 운동복 갖춰 입고 뛰고 있는 러닝 크루들을 발견하고 부랴 부랴 레깅스를 한 벌 구매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컴프레션 니삭스, 좀 더 얇은 무릎보호대, 러닝 벨트, 러닝용 팬츠 등을 새로 구입하고 싶지만...

우선 참고 있다. 10km에 성공할 때마다 선물로 나 자신에게 수고했어상을 시상할 예정이다.

운동화는 남편이 하나 구매해 줘서 아주 신나게 신고 있는 중이다.

(참고로 새벽 그린핀도르 러너 중 한 분이 동일한 모델을 신고 있다고 남편이 귀띔해 줘서 우쭐해졌다)

 

 

트랙에는 갖가지 본인만의 자세와 복장으로(대부분 나이키 협찬 멤버들 같으나) 뛰고 있지만

내공이 느껴지는 몇몇 분이 계신데 그중 나의 롤모델 분도 있으시다.

살짝 비치는 얼굴(빠르게 스쳐 지나가서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로 봐서는 느낌상 40대 후반, 50대 초반인데

건장한 근육, 힘차게 내딛는 다리와 팔의 아름다운 움직임, 균형 잡힌 몸매.  

그저 뛰는 모습을 보면 아 멋지다. 닮고 싶군요.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뒤따라 한 무리의 러닝 크루들이 있는데

20대로 보이는 사람들이다. 얼굴에 '젊음'이 뿜뿜 묻어나는데

방긋방긋 웃으며 잘도 뛰어간다.

 

 

나는 홀로 잘 뛰는 무리들에게 방해가 될까 

바깥쪽 7번 트랙 쪽에서 혼자만의 속도... 걷기 운동하시는 할머니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뛰고 있다.

예전에 명상 수업이 어려웠는데, 머릿속을 비우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달릴 때면 그저 멍해지고 그저 한껏 달리고 나면 개운해 지는 느낌이다.

명상 후 느낌이 이런 걸까 막연히 생각해 본다.

달리고 난 후의 작은 성취와 어제보다 나은 나에 대한 만족감.

그리고 계속 전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나이키앱 같은)가 안정감을 준다. 

 

느리지만 슬금슬금 계속 달려보겠습니다.

언젠가는 목표지점까지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며...

과연 성급한 내가 달리기로 인내심을 배울 수 있을지 

30일간 달려보고 기록해 보려 한다. 

 

 

 

 

높고 푸른 하늘, 이런 날씨에 달릴 수 있다니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