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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두번째 인생

by 와락 2020. 5. 14.

"인생을 두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빅터 플랭크 <죽음의 수용소에서> 

 

 

 

코로나로 모든 것이 정지 버튼을 누른 것 같지만 

아이들은 쑥쑥 자라고 나는 상담센터에 수련생으로 들어가서 시간이 될 때마다 상담을 하고 있다(고 쓰고 싶은데 최근에 드롭되었다...)

6월에는 필기시험도 치르려고 준비 중이다(계속 똑같은 페이지만 펴 놓고...)

 

 

회사에서는 기쁜 일과 슬픈(보다는 좀 언짢은 일)이, 재미난 일, 당황스러운 일 등이 순식간에 벌어지고

텐션이 높아 일의 흐름을 따라가다가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가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나이 마흔이 주는 여유인 듯싶다. 

전보다 기억력도 체력도 떨어지지만, 감정 소모는 좀 더 빠르게 회복되는 느낌이랄까. 

잃는 것도 있지만 얻는 것도 있다는 사실. 그렇게 스스로 잘 달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시봉이는 한 3년 전에 산 분홍색 헬맷을 쓰기 싫다고 무작정 울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침대에 대자로 누워 발버둥을 치며 스스로를 자책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때리기까지 하며 '야 이 바보야. 왜 분홍색을 샀어. 엉엉엉.. 엉'

그 정도로 머리를 치며 자책할 것인가 싶지만 그건 엄마로서의 안타까움이고

시봉이는 무척이나 지난날(당시 6살)의 본인의 취향에 대해 이불 킥 이상으로 한탄을 하고 있었다. 

 

시봉이는 한 때 핫핑크와 아파토사우루스와 글자 ㄷ과 치킨을 좋아했는데

여전히 좋아하는 것은 '치킨'이다. 

취향은 일부 변했지만 시봉이는 여전히 시봉이고, 몸도 마음도 성장했다.

그리고 며칠 후, 할아버지 댁에서 어른용 빨간 헬맷을 발견하고 신나 했지만

돌아와 머리에 써 보고는 맞지 않자, 다시 분홍색 헬맷을 착용하고 '이 헬맷이 머리에 맞네'라고

당분간은 써 보겠다며 인심 쓰듯 말하기도 했다. 

후회도 했지만, 현실도 받아들이고. 어느 정도는 스스로 타협도 하고.  

이 지점에서 다시 또 분홍색 헬맷을 왜 샀는지에 대한 후회와 자책은 없다. 

 

멀쩡히 육지에 도착했음에도  바다 한가운데서 나를 지켜주던 뗏목을 끌고 다니듯

과거의 아쉬운 기억들을 놓지 못하고 때때로 복기하며 '어땠을까'를 곱씹고 있는 나 자신이 오버랩되었다. 

기억들은 소중히 쌓아 두면 된다. 결국, 바꿀 수 없는 선택과 경험이고. 

다만, '어땠을까'를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빅터 플랭크 선생님 말씀처럼 '인생을 두번째로 살고 있다'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지.

내가 막 하려던 행동이 첫번째 인생에서 그릇된 행동이었다고 하면 만회하기 위해 

좀 더 관대하고 여유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