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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함께 63

아이들은 자란다7 경은 올 해부터 주말에 캐나다문화어학원에 다니고 있다.제주에서 올라 오기 전에 대기에 걸어놓았는데, 일년이 넘어서야 간신히 수업에 참여가 가능하다는.봉은 아직도 대기 상태이다. 토요일 오전 시간에후다닥 준비를 마치고 광화문까지 와서 수업시간에 늦지 않게 아이를 들여보낸다.의젓한 경선생은 수업에 방해 된다며 겉옷을 벗고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테이블 위에 교재를 펼치며 수업들을 준비를 한다.내 딸이지만 어쩌면 그렇게 침착할 수 있는지 참으로 놀랍다. 강의실이며 통로며 바글거리는 사람들로 비좁은데서로 어깨가 닿지 않게 비켜가면서 아이를 케어한다.주말 반이라 그런지 아빠들의 참여도 많은 편인데, 대기실에서 아예 기다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경이가 수업하는 동안 남은 세 식구는 교보문고에 가서 어린이책 코너를 .. 2016. 2. 6.
생일이 뭐라고, 집념의 시봉. 엉뚱한 둘째가 어느 날 얼굴에 김을 붙이고 다니며 어깨를 들썩이길래 내가 무심코 시봉이라고 불렀는데, 싱크로율 100%인 이름에 가족들 모두 깔깔대며 그 이후로 종종 시봉이라 부른다. 사랑이 가득 담긴 애칭이지만 정작 본인은 싫은 지 '힝. 그런 말 하지마. 그런 말 들으면 나 속상해' 라며 조그만 입을 삐죽거리고- 매달 교회와 어린이집에서 열리는 생일 파티 때마다 초조해 하며자기 생일은 왜 겨울이냐고 소파에 얼굴을 파묻고 격하게 울던 시봉이는11월 부터 설레여 하기 시작했다. 5살 생일 파티를 하려면 밥도 씩씩하게 잘 먹어야 하고아침에 일어나 울지 않고 어린이집에 가야 하고양치 할 때 도망가지 말고, 떼쓰지 않고 옷도 잘 입어야 하고이 외에도 무수히 많은 것들을 오로지 생일 파티, 케이크 위에 나이 수.. 2015. 11. 28.
11월의 대화 " 엄마 볼이 왜 그렇게 빨개?부끄러워 하는 것 같아."볼터치를 과하게 했는지, 시성이가 내 볼을 보고. " 엄마 비오는데 차는 밖에 세워두지 말고지하주차장에 주차하자. 비 맞으면 차도 아프잖아." 월요일 퇴근길, 차 안에서 시경이가. "이모는 책도 만들고 공연도 해. 이모는 뭐든지 잘 하나봐""아빠도 잘 고쳐. 아빠는 참 대단해." 이번 주 자기 생일에 이모가 공연 때문에 홍콩에 가야 한다고 설명하니 시성이가 우울해 함.(식구가 6명이면 케이크를 큰 걸 사도 된다고 흥분했는데, 이모가 없을 거라하자...예상치 못한 충격에 휩싸이고)이에, 케이크 크기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시경이가 이모가 없어서 서운하다고 생각하는 줄 알고이모는 뭐든지 잘 하는 사람이라고 한껏 추켜세움.질세라, 느닷없이 아빠 칭찬을 하는.. 2015. 11. 18.
처음부터 잘했던 것은 아니야 요즘 주자매는 격렬하게 말로 싸우고 있다. 전에는 일방적으로 둘째가 당하는 쪽이었는데이제는 곧잘 논리적으로 따지고 든다. 그런 상황을 매우 언짢아 하면서 경은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로조목조목 혼을 낸다(어디서 감히?) 말을 못할 것 같으면 그냥 울어 버리던 둘째가 요즘엔 독이 가득 오른 얼굴로 씩씩대다가벽쪽으로 붙어서 혼자 숨을 고르는데얼굴에 '이기고 싶다. 진심으로'가 씌여 있다. 그래. 엄마는 니 맘을 알 것 같아. 주자매의 혼이 담긴 말싸움이 끝나면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머리를 맞대고 그림을 그리는데 본인의 창작열을 가열차게 뿜어내던 둘째는언니의 그림을 보고 좌절하기 바쁘다. 가족들은 보고 그리는 그림에 더욱 소질을 보이는 경이보다 혼자 쓱쓱 그려대지만 어느덧 오-그럴 듯 한데. 무언가가 완성된둘째 .. 2015. 10. 7.
디귿의 세계 둘째가 요즘 영어에 푹 빠졌다.집에 오면 본인만 아는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 데주로 그날 배운 단어를 가지고 어미를 조금씩 바꿔가며 말한다.놀라운 건 경이가 다 알아 듣는다. 싱기방기. 어제 저녁에는 모두 자려고 누웠는데엄마 이제 그만 슬리핑 해. 내 귀를 의심하며, 머라고? 다시 묻자슬리핑 하라고. 경은 그게 아니야 슬리이잎 이라며 어김없이 티칭을 해주고. 경이는 언제나 배움의 열정이 넘치기 때문에무언가를 배워오고 나에게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 전혀 새롭지 않은데,늘 슬픔이 처럼 늘어져서 양호실에 가겠다고만 하는 우리 둘째가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신기하다. 가족들도 저 녀석이 뭘 하긴 하는구나 싶어 한 마음으로 안도하고.어쩌면 두 자매에 대한 기대치가 이렇게 다른지 알다가도 모를 일. 내.. 2015. 8. 18.
난쿠루나이사 오키나와 위스망스의 말에 따르면 데제생트는 "상상력은 실제 경험이라는 천박한 현실보다 훨씬 나은 대체물을 제공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데제생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했다. 그러나 나 역시 그냥 집에 눌러앉아 얇은 종이로 만든 브리티시 항공 비행 시간표의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며 상상력의 자극을 받는 것보다 더 나은 여행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느낀 적이 몇 번 있었다. 알랭드 보통 남편이 몇 해 전부터 오키나와 노래를 불렀지만 제주랑 다를게 머냐고 콧방귀를 뀌다가 베트남 다낭쪽 예약이 뜻대로 되지 않아 급하게 오키나와로 가게 되었다. 여행생활자도 아닌데 의도치 않게 여행을 생활처럼 하고 온 나로서는 오키나와는 제주의 장마철 태풍 오는 여름날의 한 때와 다를 바 없고 난생 처음 급체.. 2015. 7. 15.
여섯 번째 생일. 시경이와 함께 맞는 여섯 번째 생일. 그리고 어머니의 두 번째 기일. 하루 차이로 생일과 기일을 맞이하는 우리는 마음껏 축하도 애도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5월을 보낸다. 이미 나의 생일은 6년째 희미해져가고- 매년 수술일자를 나의 생일로 잡은 의사선생님을 원망하며 보내고 있다. 선생니임...ㅠㅠ 딸과 아내의 생일이 같아 축하 세레모니는 한 번에 다 하면 된다고 흐뭇해 하던 남편은 다음 날이 어머니 기일이라 더욱 더 말 수가 적어지고. 여섯 살 주시경. 목선은 매끈하고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어 놓으면 단정한 이마 선이 두드러지고 눈웃음과 함께 보일듯말듯 애가 타게 보여주는 보조개가 인상적이며 엄마가 읽어 준 700여권의 책 보다 '시크릿쥬쥬 애니메이션'이 끼친 영향이 더 큰 아이. 발레리나가 꿈인, 다리를 .. 2015. 5. 29.
그날 밤, 그 아이는 괜찮을까. 신나게 회식을 하고 집에 돌아가 씻고 자리에 누우려는데 '꿀렁꿀렁, 짭짭'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이를 가는 것도 모라자 손까지 빠는 거냐. 둘째 녀석을 돌아보니. 실눈이 살짝 떠져 있고 , 동공은 힘이 풀린 상태에서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입에서 하얀 거품 같은 것을 내뱉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비명에 가까운) 큰 소리로 남편을 불렀다. 이제까지 살면서 처음 '경련'을 본 것인데, 온 가족이 화들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유일하게 냉정을 유지하며 남편이 숨을 쉬는지 확인 하고 나에게 119를 부르라며 지시했다. 머리 속은 이미 하얘지고, 짐을 주섬주섬 챙겨 119에 올라타 분당서울대병원으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지금까지 응급실에 간 적은 없었던 터라 가는 내내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르겠다.. 2015. 3. 13.
아이들은 자란다 6 엄마 오늘도 늦게 와? 아빠는 매일 아침 순식간에 없어져. 우리가 눈을 뜨기 전에 나가서 그런가봐 출근 준비로 바쁜 아침 어제도 내가 늦게 들어와 얼굴을 못봤다며 오늘은 꼭 일찍 와서 놀아달라고- 경은 내 뒤를 졸졸 쫓아 다니며 종알 거린다. 엄마 왜 아빠랑 똑같은 색깔의 옷을 입었어? 엄마 우끼다. 우헤헤. 엄마 회사 가지마. 히이잉. 둘째는 내 다리를 붙잡고 매달리며 어리광을 피우고. 현관문을 닫기 전 경은 오늘은 일찍 들어오라며 단호하게 한 마디. 네네. 알겠습니다. 두 아이들은 이제 여섯 살, 다섯 살이 되었다. 제주에 있을 때는 매일 아침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노래를 부르더니만- 이제 학기가 시작되길 은근히 기다리는 것 같기도(내가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인가) 하루 종일 먹고, 자고, 싸고, 놀고.. 2015. 2. 13.
쿠키 한 조각, 분노 한 모금 어제 저녁 시경이는 어린이집 친구가 선물로 준 곰돌이 쿠키를 소중히 서랍에 보관해 두었다가(무언가를 받으면 서랍에 꽁꽁 넣어두기 부터 먼저 한다는) 집에 가는 길 야금야금 먹으려 비닐 봉지를 뜯었다. '언니 그게 뭐야?' 라며 시성이가 반갑게 달려왔지만, 애써 모른체 하며 혼자 먹으려던 아이는 엄마인 내 눈치를 살짝 본 후 동생에게 곰돌이 오른쪽 귀때기를 내어주며 조금만 먹으라 신신 당부를 하고. 그러나 우리 주시성은 언니의 생각과 달리(우려했던 대로) 곰돌이 얼굴 통째를 먹어 치워 당황함과 분노, 울분을 선사하였다. 주시경의 분노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비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채 퍼붓고 있고 와이퍼를 최상 단계까지 올렸지만 시속 40km 이상을 밟지 못할 정도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오라 CC 사.. 2014.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