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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49

철학자와 늑대 11년간 늑대와 동거한 괴짜 철학자가 있다. 개도 아닌, 늑대라니.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는 늑대형제(브레닌)을 통해 철학자로서 다른 동물들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우리 영장류의 삶을 되짚어보고, 기존과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특히, 삶의 의미란 목적이나 목표, 소유와 같은 것이 아니라 살면서 만나는 특정한 몇몇 순간의 그림자 속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최고의 순간에 대한 오해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철학서라고 해서 좀 부담스럽게 생각했는데, 작가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특유의 유머에 낄낄 거리기도 하고. 시간적인 존재로서 직선 위의 삶을 살며 쉼 없이 목표와 계획을 향해 달려가는 영장류와 달리 둥그런 곡선 위의 삶에서 순간순간을 완전.. 2014. 8. 7.
마더쇼크 어린이집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집에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시경이가 요즘 부쩍 오줌을 팬티에 지리는 횟수가 잦아졌다는 것인데아이가 조금만 문제가 있어 보여도 가슴이 철렁거린다. 오줌을 참는 것 외에도 한 두 가지 특이 행동들이 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어육아맘 카페에도 검색해보고, 시경이와 단 둘이 시간을 갖고 물어보며 타일러도 봤지만크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제주도에서 온전히 '아이들을 위한 저녁이 있는 삶'을 충실히 보내고 있는 내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다시 육아서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예전에 ebe에서 방영한 '마더쇼크'책에 나온 엄마들은 하나 같이 내 모습이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 책도 많이 읽어주고 여러모로 노력도 하지만 막상 아이가 보채거나 짜증을 내면걷잡을 수 .. 2014. 7. 11.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영국 런던 근교의 가상의 베드타운 도시, 알링턴파크에 살고 있는 삼십대 중후반 기혼여성 다섯 명의 하루를 섬세하게 그린 이야기이다. 도입부는 비 오는 알링턴파크를 디테일하게 묘사한 장면들의 연속이었는데솔직히 집중이 잘 되지 않아 몇 번이나 반복해 읽으며 몰입이 되지 않는 나를 탓하다 보니어느덧 '줄리엣'의 삶에 완전 빠져들고 있었다. 다섯 명의 여인 중 유일한 워킹맘이기도 한 줄리엣은(파트타임 직장이 있는 메이지도 있긴 하나)어릴 적부터 똑똑한 아이로 사람들의 기대를 받으며 자랐지만 결혼, 출산, 육아를 겪으며평범한 보통의 여자가 된 자신에게 실망하며 끊임없이 자아분열 중이다.자신의 삶에 주어진 보상이라고 생각했던 남편은 하루 종일 직장과 관련된 생각을 하며 가족의 삶에서 멀찌감치 벗어나 있고, 그런 그.. 2014. 6. 26.
콰이어트(Quiet) "외향적으로 보이는데, (생각보다) 사교적이지 않네요"이 책에 나온 단어를 활용하면, 조직생활에서의 나의 평가다. 회사에서 실시하는 성격진단 테스트를 보면 언제나 '활발하고, 적극적인, 자기 주장이 강한'편에 속하지만그런 외향적인 사람들과 다르게 '잡담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오히려 업무 이야기가 더 편함- 위험을 굉장히 싫어하며, 이상하게 진지하고,회의를 제외한 모임에 있어 4명 이상이 되면 티는 내지 않지만 무척 불편한 느낌이 드는, 퇴근 후 혼자 책을 읽을 때 가장 행복하고, 블로그에서 구슬을 꿰듯 줄줄이 이런 저런 잡다한 것들을 써내려가며 스스로 위로하는' 나이기에 양보다는 질을 우선하는 나의 인간관계가 '반사회적이다라고 다그침을 받는게 아니라'내 성격의 일부로 '괜찮아'라고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 2014. 6. 22.
린인 가끔 화장실에서 마주치면 간단한 안부를 묻던 사이인 그녀가 2월까지만 나오고 그만둔다고 한다.업무적으로 함께 할 일이 많지 않아 그닥 친하진 않았지만, 나이도 같고, 두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만으로 '동지애'를 느끼고 있었는데, 그녀는 담담한 얼굴로 전업맘으로 살거라 전했다. 결정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을까.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수 있을 것 같았다. 친했던 사람들이 떠나는 것보다 꿋꿋하게 다니고(혹은 버텨내고)있다는 사실만으로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던'동지'가 그만둔다니 그녀의 선택을 진심으로 응원해주면서도 동시에 착잡한 마음이 든다. 내가 뭐라고, 나는 악착같이 버티는걸까.그녀는 행복한 미소를 띄우고, 홀가분하게 '이제 아이들에게 돌아가요'. 라고 하는데.나는 이 자리에 앉아 있는게 맞는 걸까. .. 2014. 2. 8.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 강연(서천석 박사님) 서천석 선생님 트윗을 보고, 제주 내려오시는 일정은 알았지만두 아이들 때문에 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주시성이 낮잠을 길게 자 준 덕분에엄마께 양해를 구하고 설문대여성문화센터로 고고. 강연 10분 전 겨우 도착. 2시 정각에 시작한 강연.차분하면서도 매끄럽게 시작하는 강의.목소리나 제스처가 크지도 않은데, 역시 집필 하시는 분이라 그런지 본인의 컨텐츠만으로청중을 자기쪽으로 몰입시키는 능력이 출중하신 듯. 어느 포인트에서 웃음을 이끌어야 할지도 명확히 알고 계신듯 하고. 강연을 하면 분위기를 업시키려는 욕심에 말실수가 나올수도 있고, 강연자가 민망할까봐 같이 웃어주기는 하지만 속으로 실망한다던지 하는 상황들이 종종 벌어지는데, 서천석 박사님은 끝까지 겸손한 자세로 강연에 임해주셨다. 좋아하는 저자를 .. 2013. 10. 12.
왜 엄마는 나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했을까? 퇴근시간을 두어 시간 앞둔 지난 금요일 오후, 시성이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별일이 있다는 싸인.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채로 통화 버튼을 누르니 다급한 선생님의 목소리. 내용인 즉, 시성이 팔이 빠진 것 같다는 것.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멀어져 가고, 머릿속이 하얘져가는데. 그래서, 지금 시성이는 어디있나요?네, 하원 버스 타고 가고 있어요.뭐라고요? 팔이 빠졌다고 하지 않으셨어요?아니요. 팔이 빠진것 같다고요. 빠진것까지는 모르겠고.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일단 알겠다고 하고서는 무작정 노트북을 가방에 쑤셔넣고는 팀장님께는 제대로 보고도 못한채 다급하게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운전하는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그저 별탈 없기만을 빌면서. 어린이집 차를 타.. 2013. 9. 4.
서른살에 미처 몰랐던 것들, 김선경 안식휴가 마지막 날이다. 2013년 7월 한 달간 정말 후회 없이 놀았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20분간 달려가면 드넓게 펼쳐진 바다그늘막 텐트를 치고 가져간 간식거리를 먹으며 아이들과 모래놀이도 하고 바다에 들어가 덩실덩실 파도에 몸을 맡겨보기도. 아이들은 튜브 위에서 꺄르르. 둘째놈은 떨어질까 싶어 아빠 다리를 꽉 붙잡고. 아이스박스에 담아온 시원한 맥주를 흘린 땀 만큼이나 벌컥벌컥 들이키고.문어다리를 질겅질겅 씹으며 까무잡잡해진 서로의 얼굴을 보며 놀려댄다.이렇게 즐거워도 되나. 서울에 혼자 계신 시아버지 생각에 움찔하며 죄책감이 들기도 하지만.지금, 모래알 같은 일상의 작은 기쁨들을 놓치지 않기로. 이 작은 기쁨들이 쌓인 것을 작가의 말대로 행복이라 한다면나는 앞으로는 더욱 '제대로' 느끼고 즐기려.. 2013. 8. 6.
해피 패밀리: 우리도 관성일까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가족이란, 누구 보는 사람만 없으면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들이다 - '가족'이란 존재에 대한 위선과 회의를 드러낸 소설들을 읽을 때마다 기타노 다케시의 말이 떠오른다. 내다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존재.핏줄로 엮인 거부할 수 없는 관계, 친근함이 당연한, 의무적으로라도 그래야 하는 관계하지만, 어쩌면 그건 우리를 지금까지 함께 살게 한 것은 '관성'일지도 모른다는.내 가족관계도 뒤돌아 보게 만든다. 여보. 우리도 관성일까? 세상에 금지된 것은 없다며, 치과의사 입을 빌려 저자는 말하고 있다.그렇지만 남매의 사랑은 글쎄. 거부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손에 놓지 못하는 것은각 화자들이 토로하는 내밀한 속내를 읽을 수록, 마음대로 할 수 .. 2013. 7. 11.
언니의 독설: 괜찮아,울지마, 잘할거야. 요즘 남편과 나는 바늘로 서로의 상처를 꿰매주기는 커녕,그 바늘 끝으로 후벼파고 있다. 2주 전에는무슨 말 끝에, '모성애 없는 여자의 기준이 바로 나'라고 해서내 두 귀를 의심했는데, 아무리 우리 관계가 다시 좋아진다고 하더라도그가 내게 뱉은 그 말은 문신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제주 출장 3박 4일 후, 몸살이 났다는 이유로 누운 채,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고그리 생각했다는 것인데, 너무 아파 링겔을 맞고 온 나는 어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허탈하기까지.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지난 제주 출장에서, 날 만나는 모팀의 팀장님이 내 이름은 잘 기억 못하면서'XX팀'에 있었다고 하니 그 알듯 말듯 요상한 미소를 지어서 지금의 사수에게대체 4년전에 내가 어느 정도였냐 물어보니 그때 당시 '미친.. 2012. 11. 18.